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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원로목사

2015 예수 다시 사셨다 (부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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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4-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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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다 (부활주일)” 

권영국 목사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 대상으로 기증해 주십시오.특별히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랍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평생 못 들어 드렸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소이다””그는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을 재미있고 웃기려고 애썼던 코미디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막상 자신의 죽음을 맞을 때에는 어떤 웃음기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죽음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도 막상 자신의 죽음의 고통 앞에서는 두려워합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하나님과 기독교를 조롱하였던 독일의 니체는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어둡다 어둡다 나에게 빛을 다오...”라고 불쌍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프랑스의 무신론자였던 볼테르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 오 그리스도시여... 예수 그리스도시여...”라고 외쳤습니다. 
   헬라어에 생명이라는 단어는 두 개로 나누어서 씁니다. 푸쉬케(생명)는 코에 숨이 붙어있는 육신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조에(생명)는 부활의 생명체를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육신의 생명이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느냐?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자는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생명 (조에)을 가진 자만이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조에)를 가진 자들은 육체적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에, 성경은 “죽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잠잔다”라고 표현합니다.  육신의 생명(푸쉬케)만을 살다보면, 아무리 정직하고 선을 행하였다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절망과 두려움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거하게 됩니다. 
   미국인 인도 선교사였던 스탠리 존스는 평생 수많은 지구촌을 다니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곳은 십자가가 없는 무덤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곳은 십자가가 있는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의 생명을 푸쉬케로부터 조에의 영원한 생명의 자녀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201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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