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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원로목사

2017 용서 받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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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7-08-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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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는 삶 

권영국 목사

    밀양이라는 영화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한 번 더 생각해봐야할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역)가 아들 준이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서 살게 됩니다.  피아노를 렛슨 시키면서 겨우 살아가는 중에 아들 준이가 유괴를 당하게 되고, 돈을 요구합니다. 사실 신애는 돈이 고작 870만원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땅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은행에 돈을 두는 것보다 땅에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공공연히 돈 주체가 어려울 만큼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들 준이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애에게 다가온 사람은 한 집사님이셨습니다. 이 큰 아픔을 치유 받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고 오직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권합니다.  처음에는 영혼의 안식이나 영원한 생명을 부인하였지만, 저미러오는 한과 응어리를 쏟아내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서에 대해 배우게 되고 용기를 내서 자기 아들을 유괴하여 죽인 범인을 용서해주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떨리는 사지를 조체하느라 애를 먹던 신애가 어렵게 입을 엽ㄴ디ㅏ.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고개를 처박고라도 “감사와 감격”을 할줄 알았는데, 범인은 태평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기를, “자기는 이미 감옥에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용서를 다 받았기 때문에, 죽은 아이의 엄마에게 더 용서받을 것이 없다”라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신애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정말 죽기보다도 더 싫은 용서! 자기의 분신과 같은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게 결정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은 가장 큰 피해자인 자기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용서해버렸다는 것이 분노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분노를 갖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으면 아이 엄마에게는 용서를 빌 것이 없다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서받은 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용서함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첫째는 “형제와 화해하고...”가 우선입니다.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마5:23-24) 형제의 용서함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해결되었다고 해서, 계속해서 형제와 이웃과 원수 맺고, 분노하며 살아간다면 그릇된 “용서”의 착각입니다.  가이사의 문제는 마땅히 감당해야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둘째는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보면 “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같이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나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용서받았음을 깨달았으면 누구라도 용서하시며 사는 것이 “용서함”받은 자의 마땅한 삶입니다.
201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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