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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원로목사

2018 분노와 플라스틱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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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8-10-1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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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와 플라스틱병

권영국 목사
  
   엊그제 식당에서 음료수를 주면서 스트로를 안주고 가기에, 다시 불러서 스트로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한번 쓰고 버리는 스트로이지만, 버려진 스트로는 썩지도 않고 물고기들에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 된다고 합니다.  분노와 플라스틱병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분노의 말 한마디는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버려진 플라스틱병은 썩지않고 두고두고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부모의 분노는 자녀들이 마음의 병을 평생 앓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자연을 훼손하면 재해로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분노가 훗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고 쉽게 던진 플라스틱 병이 지금 지구를 몹시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십니까? 내가 버린 페트병은 재사용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플라스틱병은 1년에 4천8백60억개가 사용되고 있고, 2021년이 되면 1년에 약 5천8백30억 개가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재활되는 비율은 3.5%가 안됩니다.  나머지는 땅에 매립되거나 바다로 버려지게 됩니다. 현재 물고기들의 경우 1/3에 해당하는 물고기들이 플라스틱 조각들을 먹고 있으며, 벨기에 겐트대학 과학자들은 “수산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1년에 1만1000개가 넘는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먹는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쉽게 사용하고 버려지는 프라스틱병들은 참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삶을 위협합니다.  
   우리들의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할 때에 스스로 거울을 보십시오.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흉한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는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내게 더큰 고통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노를 참을 수 없거들랑 6초면 세어라...고 정신학자들은 권합니다. 그러면 화난 감정이 사그러들고, 3분이면 화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분노라는 말은 사전적 정의로는 “강한 불쾌감과 분한 마음”입니다.  분노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노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마치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빨간불이 켜지듯, 뭔가 잘못되었다는 경고의 신호입니다.  분노의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그냥 달리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기에, 내가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에 “분노의 경고등”이 켜지거든 다시 한번 문제성을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4:26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고 말씀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잠언과 전도서를 통하여 지혜자의 특성중의 중요한 것이 “노를 그치게하라, 노를 쉬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농도가 다를 뿐이지 누구에게나 분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분노는 무조건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표출한다고해서 가벼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잠언16:32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언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2018/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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