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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0 히스기야와 시드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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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1-1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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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기야와 시드기야 >       
                                                                             이익관 목사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홀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렘21:1~2)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주 어른들도 굵은 베옷을 입으니라(사37:1~2a)

 

   요아스의 아들인 시드기야 시대에 이르러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하여 망국의 슬픔을 안아야만 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네 번째 포위 하였을 때, 시드기야 왕은 나라의 지도자들과 제사장 등을 예레미야에게 보내며 이 고난을 피하게 해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라시며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시드기야는 바벨론군의 포위망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여리고에서 붙잡혔고, 면전에서 아들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봐야 했으며, 자신은 두 눈이 뽑혔고, 놋 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에 끌려가 옥사(獄死)를 당합니다.

   한편 앗수르군 18만 5천인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 중 어른들과 왕궁 맡은 고관과 서기관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어 난국(難局)을 지나가게 기도하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 18만 5천인을 치시니 하루아침에 시체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이루어졌을까요? 이사야의 기도는 능력은 많았고, 예레미야는 기도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선지자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와 시드기야 본인들의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먼저 히스기야를 살피면 앗수르 군이 침입하여 항복을 강요할 때 이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는 자신이 먼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사람을 보내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반면 시드기야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에 항거합니다. 바벨론 군에게 예루살렘이 포위 되였을 때 시드기야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회개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예레미야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혹시> 라는 말은 절대적인 믿음의 표시가 아니며, 기도자의 자세도 아닙니다. 속된 말로“아니면 말고”라는 태도입니다.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셨지요. 히스기야는 국민의 지도들과 함께 옷을 찢고, 회개하며 기도로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 하였습니다. 반면 불순종의 사람 시드기야는 겨자씨 만 한 믿음도 없어 자신은 물론, 가족과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불순종하는 자, 회개 없는 기도, 이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버림받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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