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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0 처음과 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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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1-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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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과 나중 >        
                                                                             이익관 목사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 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24:17~19)

어느덧 2010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지난 한 해 동안의 자신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며 새해를 맞이함도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 잘 나가던 사람이 끝에 가서 그릇된 길로 가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을 불행케 한 역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유대 나라 초대 왕 사울이 그러했으며, 솔로몬 왕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다. 솔로몬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화를 누렸고, 또한 뛰어난 지혜를 가리켜 솔로몬의 지혜라고 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에는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여인들과 잡혼을 하는가 하면 성전에서 우상숭배를 묵인하는 등 말년의 타락은 이스라엘 나라를 분열하는 원인이 되였다. 유대 나라 아하시야 왕의 아들로 제 9 대 왕으로 등극한 요하스 역시 이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부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미인 아합의 딸 아달랴가 유대나라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다윗의 혈통들을 몰살할 때 아하시야 왕의 누이 여호세바의 지혜로 구출을 받은 자가 요하스 왕이다. 어린 요아스는 그의 고모부(姑母夫)이며 제사장인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성전 안에서 보호와 종교적 훈육을 받으며 자라다 그의 도움으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 7세 때 왕위에 오른 것이다. 여호야다의 지도로 요하스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그간 버려졌던 성전을 보수 하는 등 하나님의 일에 열심 하였다. 여호야다가 늙어 130세에 운명하자 이 기회를 타서 유다 방백들이 요하스에게 옛날과 같이 다시 우상 섬길 것을 권하자 아세라 목상(木像)을 비롯하여 각가지 우상을 섬기게 이른다. 이는 하나님 섬김 보다 방백들의 말을 들어야 나라가 평안하리라는 정치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요하스에게 우상 섬김을 책망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권하였다. 요하스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오늘에 있게 한 여호야다를 저버릴 뿐 아니라 인척으로는 고종 사촌간이 되는 스가랴를 돌로 처 죽였다. 스가랴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요아스를 향하여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伸寃)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순교하였다. 스가랴 사건 1년 후 아람 군대가 침입하였는데 당시의 상황을 성경은 기록하기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하셨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니 적은 무리가 침입하였어도 패망을 당하였으며, 이 와중에 요하스는 크게 부상을 당하였다. 요하스가 부상을 입고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을 신복들이 모반하여 처 죽였고, 그는 열왕(列王)과 달리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였다. 요하스의 죽음을 성경에 다시 기록하기를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이와 같이 요아스를 징벌 하였더라>라고 하셨다. 요아스의 시작은 아름다웠으나 끝까지 자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의 불행을 보면서 이 해가 가기 전 자신의 한 해의 모습을 살핌도 귀한 일이라 하겠다. 
12/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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