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안 창건 목사) > 이익관 원로목사

본문 바로가기

이익관 원로목사

2011 기도의 사람 (안 창건 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8-07 15:01

본문


< 기도의 사람 (안 창건 목사)> 
이익관 목사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더라(단6:10)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단6:13) 내가 기도하는 일을 그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표준 새 번역개정판 삼상12:23a)

왜정시대입니다. 장로 한 분이 동경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3등칸 일본인들 속에 끼기 싫어서 큰맘 먹고 이등칸 표를 끊었습니다. 장로님이 지정석에 가니 마주 앉는 좌석에 일본인 고관으로 보이는 이가 먼저와 앉아 있으니 공연히 마음이 불안합니다. 점심때가 되어 도시락을 샀는데 앞자리의 일본인도 도시락을 삽니다. 일본인 고관 앞에서 식 기도를 하느냐, 그저 넘어가느냐 장로님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장로님은‘하나님 오늘만은 용서하십시오.’하고 도시락을 들기 시작하였는데 앞에 앉은 일본인은 조용히 기도하더니 도시락을 먹기 시작합니다. 장로님은 부끄러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줄 알았다면 기도하고 먹는데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와 좋은 대조의 사람이 있습니다. 평양신학교 동문 중에 안 창건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남한에서 신학을 마치신 분입니다. 어느 해 삼각산 중턱에 있는 사설 기도원에서 한 주간 같이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도 쉬는 시간에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인민군에 나가지 않으려 이리저리 피하다가 홀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음을 알고 인민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인민군에 들어가자 국군과 대치하는 일선에 배치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배식된 밥을 놓고 기도하고 보니 자기 몫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한 끼를 굶었습니다. 다시 배식하여 왔을 때에도 기도하고 보니 자기 것이 또 없어졌습니다. 소대 안에 있는 공산당 세포위원의 소행입니다. 밥을 내 놓으라, 모른다 거니 서로 말이 오고갈 때 소대장이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 합니다. 안 목사는 소대장에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밥을 먹으려니 누가 내 배식을 감추어 아침도 굶었는데 또 감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소대장이 안 목사에게“이리 따라 오기요”함경도의 강한 악센트입니다. 안 목사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함경도 출신 소대장이라 속으로 걱정하며 따라 갔습니다. 소대장이 자기 거처에 오더니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묻습니다. “나는 신학생이며, 황주 소재 모 교회의 전도사로 있다가 소집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소대장이“전도사님이시군요. 앞으로 나와 같이 있게 하십시다.”존댓말을 하지 않는가. 시간이 흐른 후 소대장이 자기 소개하기를 자기 어머니는 원산 광석동 교회 전도사인데 공부하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다 군에 끌려왔노라 합니다. 인민군이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하게 되던 날, 소대장이 귓속말로“지금 국군이 어디까지 왔으니 인민군은 후퇴합니다. 전도사님은 이쪽 길로 내려가시면 국군이 있으니 가서 귀순하십시오.”안 목사는 그의 도움으로 월남하여 신학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고관이 무서워 식 기도를 못하는 그리스도인, 공산군 앞에서도 기도하는 전도사를 보며 다니엘을 생각게 합니다. 다니엘을 시기한 메데 방백들이 20일 동안 왕 외에 누구에게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왕의 조서(詔書)를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과 같이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08/07/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