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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1 고집불통(固執不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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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1-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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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불통(固執不通) >
                                                                            이익관 목사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이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렘8:5)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가 쌓는도다(롬2:5~5)

 

평안북도 압록강 강변 주민들은 9월이 지나 10월이 되면 먼저 겨울 준비의 하나로 각방 문짝을 떼서 지난해의 창호지를 새 것으로 가는 일이다.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는 우화(寓話)인지 사실인지 모르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하여지고 있다. 압록강 강변에 사는 젊은 부부가 겨울 준비로 묵은 창호지를 갈고 있었다. 남편은 창호지에 풀을 바르고, 아내는 문짝 규격에 맞게 창호지를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이것을 본 남편이“이 멍청한 것, 창호지는 칼로 자르지 가위로 자르는 사람이 어디 있니.”그 말은 맞으나 아내는 멍청하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마음 상한 아내는“창호지를 가위로 자르면 어떻고, 칼로 자르면 어떤가? 아무 것으로나 자르면 됐지 사내가 별 것을 다 간섭 하네“ 그래서 창호지를 바르다 말고 부부싸움이 되었다. 평안도 급한 성격들이라 네가 옳으니 내가 옳거니 하다가 마침내 아내가 ”죽고 말아야지 이런 사람과 난 못살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 참이 지나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남편이 걱정이 되어 아내를 찾으려 밖에 나가니 강가 바위 위에 앉아 있다. 남편이 달래서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끝날 일인데 참지를 못하고 ”네레 죽는다더니 왜 거기 앉아 있니“하였다. 여자는 ”내레 정말 죽은 것 보간“그러더니 강물로 뛰어 내려 떠나려가면서도 창호지는 가위로 자른다며 두 손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떠내려갔다고 한다. 부질없는 고집의 결말이 어떤가를 보여주고 있다. 예레미야서를 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노하셔서 <너희 신(우상)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다며 하루 속히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다. 이어서 <사람이 엎드러지면 일어나고, 집을 나갔으면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였으나 유다 백성은 우상숭배를 고집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에게 다시 말씀하기를 <옛적 선한 일이 어딘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면 평강을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렘6:16) 고집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분노하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에게 내릴 벌(罰)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며,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부르짖어도 듣지 아니하리라>하셨다. 하나님은 평강 대신 고집하는 유다 백성에게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하겠노라 하셨다(렘14:11) 둘째는 <유다 나라는 망하여 온 땅이 황폐하게 되며, 왕을 비롯하여 귀족, 제사장, 거짓 예언자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옮기어 70년간 포로생활 하리라 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인내는 옳고 바른 것을 위하여 참고 견디는 것이라면 고집이란 자기 생각이나 의견만을 내세우며 굽히지 않는 것이라. 개인이든 나라이든 불의를 고집의 끝이란 멸망하는 길 외는 없음을 보여준다.                                                1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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