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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1 주는 자의 복 (구제의 달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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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2-29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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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는 자의 복 (구제의 달을 맞으며) > 
                                                                            이익관 목사

매 삼 년 끝에 그해 소산이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허름한 옷을 걸친 중년 여인이 파리의 꽃집 화려한 쇼윈도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한참 주저하다가“저 쇼윈도 안에 있는 라일락 다발을 얼마지요?“ 여주인인은 허름한 옷을 걸친 여인이라, 거의 기계적으로 ”십 프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제가 가진 돈으로 안 되겠네요 미안 합니다“ 여인은 낙심하여 변명하는 말처럼 ”아들이 라일락꽃이 필 때에 태어 나서 라일락을 좋아했어요.“ 그리고는 눈에 이슬을 맺으며 돌아서 나가려 하였다. 꽃가게 여주인은 ”혹시 실례일지 모르나 아드님이“ 그리고 말을 더 잇지 못할 때 "예 지금 아들 묘지에 가려고요”그러는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촉촉이 젖어 있다. 여인이 상점을 나섰을 때 꽃가게 주인도 자녀를 기르는 같은 여자로서 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꽃가게 주인은 여인이 원하던 라일락 꽃다발을 들고 쫓아가서 여인에 손에 들려주었다. 꽃다발을 받은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육 프랑을 가게 여주인에게 드리면서“가진 것 전부가 이것이랍니다”하자 가게 주인은“내가 댁의 아드님에게 주는 것이니 가지고 가세요.”꽃을 받은 여인은 물론, 꽃을 들려준 여주인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서로 느끼게 하였다. 이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눌 때에 오는 기쁨과 행복을 함께 느낀 것이다. 이런 나눔의 기쁨을 다윗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시41:1)라고 노래하였다. 12월은 구제이 달이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외로운 나그네를 돌 볼 것을 명하시기를 <매 삼 년 끝에 그해 소산이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아, 가난한 과부, 외로운 나그네를 보살피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이 말씀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얼마 전 영국의 경제주간지가 한국 개신교를 평하는 기사를 한국 일간지가 잠깐 소개한 일이 있다. 한국 교회당들은 호화스럽고, 목사는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 말은 한국 교회는 한마디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비난이 아닐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채택한 선교 정책 중의 하나가 네비우스 정책이다. 이 정책은 첫째 원주민(조선)교회로 하여금 스스로 자치 자급하도록 할 것이며 둘째 원주민 교회로 하여금 스스로 예배당을 마련할 것 등이 골자였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가 선교사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자체 자급하는 교회로 교회가 성장한 것은 자랑할 만 한 일이다. 이 선교정책이 한국교회의 독립심은 키웠으나 이웃에 대한 책임은 소홀히 하는 자기중심 교회로 성장케 하였다. 네비우스 정책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개 교회 중심에서 떠나 이웃의 아픔과 외로움, 고통을 나누는 한국교회로 변할 때가 이르렀다.                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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