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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2 김 익두 목사와 날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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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11-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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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익두 목사와 날도둑 >
                                                                            이익관 목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6~8)

 

   11월 3일은 고(故)김 익두(金 益斗)목두사가 태어난 날이라, 김 목사가 한국 교회에 남긴 교훈과 업적을 생각하고자 한다. 3.1 운동 후 잔악한 일인(日人)에게 많은 애국자들이 투옥 되고 피살당기도 하였다. 그중에도 가장 피해를 입은 곳이 교회로, 수많은 교회당이 파괴당하였고, 교회 지도자들은 투옥되었다. 교회가 수난을 당하여 침체상태에 있을 때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이가 바로 김 익두 목사이시다. 한국 장로교회사에 의하면 장로교 교인 수가 1919년에 144,062명이 김 목사의 부흥운동으로 1923년에는 193,850명으로 증가하였으니 약 5만 명이 증가한 셈이다. 교회당 수도 1919년에 3,640 에서 4,503으로 증가하였으니 900 교회가 증가하였다.
   김 목사는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평촌리 출신으로 1874년 11월 3일생이니 금년이 출생 138년이시다. 그가 안악읍 장날, 장에 나갔다가 선교사 소안론(蘇安論 W. L. Swallen)의 부인이 전도지를 주니 받았으나 서양의 종교라며 전도지로 코를 푸니 소안론 부인이 평안도 사투리로 “젊은이 그 종이로 코 풀면 코가 썩디요” 하자 가슴이 뜨끔하였다. 어느 기회에 안악에 온 소안론 선교사의 ‘영생’에 대한 설교를 듣고 깨닫는 바 있어 1900년에 입신하였다. 김 익두는 입신 후
   첫째: 성경을 사랑 하였다. 김 목사는 세례 받기 전 이미 신구약 국한문(國漢文)성경을 100번 통독하였다. 그가 안악 장에 나갔다가 옛 술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이 반갑다며 술집으로 이끌자 ‘여보게 요새 나 신약과 구약을 먹어 술을 못 하니 용서하시게’하였다. 김 목사는 신약, 구약 성경을 빗대어 말한 것이나 친구들은 신약, 구약하니 한약과 신약을 먹는 줄 알고 더 권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1년에 성경 3 번씩 통독하였으니 오늘, 그런 교인이 몇이나 있을까?
   둘째: 사명감이 뚜렷하였다. 김 목사가 입신 후 사업에 투신하여 1년에 1,000원 이상의 수입이 있을 때, 선교부의 권유로 월 4원을 받고 재령(載寧)교회의 전도사로 시무하기 시작하였다. 김 목사는 복음 전파하기 위하여 자신의 물질적 손실도 기쁘게 받아 드린 것이다.
   셋째: 기도의 사람 이였다. 재령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중, 선교부에서 그를 신천(信川)에서 개척하게 파송하였다. 그가 신천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이기화라는 이의 아내가 무당(巫堂)을 내리며 사신(邪神) 들자 그를 위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김 목사가 1 주일 기도하였으나 악귀가 떠나지 않고 더 발악한다. 김 목사는 만일 악귀를 쫓아내지 못한다면 신천에서 전도에 실패할 것을 직감하여 산에 가 기도하기를 “베드로는 누구이며 익두는 누구입니까”를 거듭하며 베드로에게 주신 능력을 자신에게도 주시라 기도하고 하산 후 악귀를 추방하니 그 일가가 입신하였다.
   넷째: 평소는 자부(慈父) 같으나 강단에 서면 죄를 무섭게 책망하였다. 그는 주일을 범하는 자를 날도둑이라 하였다. 날도둑이란 ‘거리낌 없이 남의 물건을 빼앗아 먹는 무뢰한’을 뜻한다. 교인을 향하여 날도둑이라 함은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자신의 사생활, 사업, 기타 등등으로 범하여 하나님의 날을 도적하였다고 책망한 말이다. 그가 계신다면 오늘도 주일 범하는 이를 날도둑이라 책망하시겠지.                                                                   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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