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따라 > 권영국 원로목사

본문 바로가기

권영국 원로목사

2017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따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7-06-05 07:51

본문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따라  

권영국 목사
 
   윌리엄 존 맥켄지 (William John Mckenzie 1861-1895.7.23.) 선교사는 1893년 12월 12일에 한국에 들어와서 황해도 솔내에서 3년의 선교사역을 하다가 34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는 한국인들과 같이 지내려면 한국 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 문화와 풍습을 익히며 살아야한다고 해서, 한국인으로 살았던 선교사였습니다. 솔내 마을에 초가집에서 한복을 입었습니다. 그곳에서 감자를 심어 먹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아픈 자들을 돌보아주며 솔내 교회 목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어느 성탄절에 서울에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한국 음식이 입맛이 맞지 않아 고생하리라고 생각하고 맥켄지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맥켄지 선교사는 겨우 적응된 한국음식 입맛을 다시 놓치지 않으려고, 보내온 모든 미국 음식을 한국인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끝까지 한국음식만을 취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은 3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복음 사역에 보람을 느끼며 불철주야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보니 그만 육체의 건강을 잃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사역의 스케줄과 몹시 약해진 상태에서 장연읍 전도를 강행하다가 뜻하지 않게 일사병에 걸렸습니다.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공되지 못한 솔내교회 예배당 부속실에 거처하면서 5일간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 착란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질병과 마지막 싸우면서 남긴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6월 23일 (토요일)
“...(전략) 잠을 잘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너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는 전신이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옷과 더운 물주머니가 있어야겠다. 땀을 내야겠다. 조금은 나은 듯 하기도 하다. 죽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조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전도하고 밤이면 고기가 추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중략)... 내 마음은 편안하며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신다. 몸이 심히 고통스러워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는 낯선 땅에 와서 열악한 환경과 싸우며 선교 활동을 하다가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멕켄지의 약혼녀였던 맥컬리양은 맥켄지와 함께 펼칠 장밋빛 꿈을 안고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을 때에 사랑하는 약혼자의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솔내에 와서 고인이 된 약혼자의 비석을 세워주었고,  그녀는 원산 지방에 머물며 열심히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3년이 채 되지못한 맥켄지 선교사의 선교 사역이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약혼녀 맥컬리를 비롯해서 캐나자 장로교 총회는 1897년 한국 선교에 대한 불을 일으키더니, 1898년 9월 8일에 푸트(W.P. Foote)목사, 매크레(D.M. Mccrae)목사, 그리어슨(R. Grierson) 박사 등 세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캄보디아 선교사들을 만나보며, 결코 헛되지 않는 그들의 수고와 눈물과 땀 흘림이 존경스러웠습니다.   
2017/5/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