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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09 주님의 위로가 있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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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1-2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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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위로가 있으시기를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2~23)

 

오랜 전 북가주 지역에 잠시 있을 때, 지역 신문에 월남전 참전용사가 Memory Day 전사한 전우의 명단 앞에 꿇어 앉아 통곡하는 사진을 본 일이 있습니다. 정글 속에서 생사를 같이 하던 옛 전우가 그리워서 그러겠지요. 이번 Memory Day 뉴스 시간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화면에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비석에 손을 올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이가 전사하고 홀로 외롭게 지내온 이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보았습니다. 어떤 철인은 죽음이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방을 옮기는 것이라 표현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죽음을 태계(他界)라고 하는군요. 어는 불자(佛者)는 죽음이란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죽음을 표현하여도 역시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라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은 슬픔 중에 가장 큰 슬픔이지요.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열 제자를 가리켜 십철(十哲)이라 하지요. 그 중의 한 사람인 자하(子夏)가 아들을 잃고 병중에 있을 때 일입니다. 역시 십철 중의 한 사람인 증자(曾子) 문병을 갔었습니다. 증자는 위로는 고사하고 몇 가지들 들어 자하를 책망하였답니다. 첫째 임자가 스승인 공자(孔子)와 동등하다고 자처하니 이는 교만한 마음이 아닌가? 어느 정도 질투심도 있었겠지요. 둘째 임자가 집상(執喪)하였다고 하나 아직 효자라는 소문이 들리지 않아 셋째 아버지가 죽었을 때 병들었다는 말이 없더니만 아들이 죽으니 병들어 누웠다니 그럴 수가! 아마도 증자는 자녀를 잃은 아픔의 경험이 없었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란 친구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의 죽음에 앞서 자녀의 죽음이랍니다. 그러기에 옛 부터 어버이는 땅에 묻고 자녀는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전하여지고 있지요. 주 집사님의 아드님의 장례식에 여러 교회를 비롯하여 각계에서 조문 오셔서 좌석이 모자라 많은 이들이 서 있어야 했습니다. 많은 조객이 있었어도 집사님 내외분 가슴의 아픈 흔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요. 다윗의 모습은 슬픔을 당한 이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다윗은 아들이 병들었을 때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자 일어나 음식을 드니 이유가 무엇이냐 신하들이 묻습니다. 다윗의 말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좋은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2~23)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 말씀대로는 창현은 천사들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으며((눅16:22) 그 좋아하는 하늘나라 음악을 즐기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겠지요. 주님이 위로가 있으시기를! 05/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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