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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0 언어는 자신의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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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1-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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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신의 인격>
이익관 목사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5~27)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3:8~10)
 
왜정시대 평양 기독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 수고하시던 분이 중년 부인의 큰 수술 끝내고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하는 말,“비단옷의 X 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큰 수술이라 전신 마취를 하였는데 수술 중, 이 여인이 중얼중얼 ‘수심가’를 부르는가 하면 ‘창부타령’이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화류계 출신이였던 이 여인은 평양 갑부의 소실이 되어 화사한 비단 옷은 걸쳤지만 속에 있는 것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요새 한국 사회에서는 삼사(판사, 검사, 교사)들의 막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린 판사가 아버지뻘 되는 이에게 재판 중 버릇이 없다고 하니, 버릇없다는 말은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그래서 육법전서는 달달 외웠지만 인성 교육이 빠졌노라 탄식하였습니다. 일부 검사의 막말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검사도 범죄자가 죄를 고백하지 않고 요리저리 피하려고 할 때 괘씸해 보일 때가 있겠지요. 그렇다고 막말을 하다니요. 또 하나 있습니다. 학교 교사라는 이가 자기 제자들에게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처럼 콱 밟아 버리겠다”고 하였답니다. 옛 부터 훈장의 X 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였는데 얼마나 속이 상하였기에 그랬을까요? 그러나 스승이란 제자에게 본을 보여야 할 분, 스승으론 해선 안 될 말이 있지요. 판사, 검사, 교사 삼사가 어떻게 꼭 같은지요. 이들의 말씨를 보면서 사람의 인격은 옷이나, 배움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이들 삼사를 보면서 어린 때 본을 보여준 고향 선배 생각이 납니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찬송가453장)를 작곡하신 장수철 씨 입니다. 그는 20대에 같은 교회의 집사로, 평양 요한 학교 동창생으로 같이 자란 故 이태선 (감리교 목사, 아동 문학가)과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 존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야! 자! 할 20대의 어린 나이에 서로 존대 말을 쓴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장 선배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서로 존대 말을 써야 해, 그 이유는 서로 존대 말을 쓰면 말의 실수함이 없지, 그리고 우정이 변하지 않아”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하셨습니다. 사람이 실수가 없을 수 없으나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셨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이어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옙5:4)우리 주변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시면 합니다. <경우에 함당한 말을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
0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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