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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1 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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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3-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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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 >        
                                                                             이익관 목사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2:22)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다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9~10).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지체가 됨이라(엡4:25)

   1938년 3월10일, 이날은 한국의 큰 별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서거하신 날이다. 미국 유학생활 5년을 끝내고 1907년 귀국한 도산은, 조선에 시급한 것은 정치인을 양성함이 아니라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정직하게 사는 인재를 양성함에 있다고 결론하였다. 도산은 인재를 양성함에는 먼저 학교를 세우는 일임을 깨달았으며, 그의 뜻에 호응한 유지 김 진후 씨가 당시의 돈 2 만원을 희사하여 평양에 1908년 대성학교가 설립 되였다. 도산은 학생들에게 교훈하기를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거짓이니, 농담으로라도 거짓말 하지 말며, 꿈에라도 정직함을 잃었으면 통회하라고 교훈하였다. 어느 날 학생 하나가 결석한 다음 날 결석계를 제출하였는데 보호자의 인장을 보니 누구의 인장인지 알 수 없게 희미하게 찍혀져 있으며, 그나마 인장을 약간 돌려 찍어 인장의 이름을 전혀 분간할 수가 없다. 도산은 결석계를 제출한 학생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니 보호자의 인장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인장을 도용한 것이다. 도산은 정직하지 못한 그 학생을 그날로 퇴학처분 하였다. 교사들 중에는 이런 조그마한 일로 퇴학처분 하는 것은 너무 과하니 한 번만 용서하자는 제의도 있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학교를 세운 목적이 국민의 사표가 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하여서는 거짓이 없어야 하고, 약속과 시간을 지킬 줄 아는 인재를 길러야한다는 것이다. 1949년 가을 평양신학교 전교우가 도산이 우거하시던 송태산장을 방문하였을 때다. 도산의 백씨(伯氏)인 안치호 장로께서 도산이 상해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들려 주셨다. 독립운동 하다 타계한 동지의 어린 아들이, 한국의 우표를 모으니 한국에서 온 우표가 있으면 주시라 부탁하였다. 도산이 어린이와 약속한 날이 바로 1932년 4월29일, 소위 일왕 유인(裕仁)의 생일날 이였다. 상해에 주둔하고 있는 일군(日軍)과 거류민이 유인의 생일을 축하하기위하여 홍구(虹口)공원에 모였을 때, 윤봉길 의사가 폭탄 투척으로 시라가와(白川)대장을 폭사시켰다. 당황한 일본 영사관에서는 각국 조게(租界)에 교섭하여 외국 조계에 있는 한국인 애국자들을 색출 하려고 하였다. 도산이 외출하려고 하자 동지들이 극구 만류하였으나, 도산은 위험함을 알면서도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외출하였다가 일본 형사에게 체포 되었다. 도산은 후일에 내가 위험하다고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가 자라서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 어찌 위험하다고 한 소년의 장래를 멍들게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약속의 장소에 나갔다가 체포된 것이라 한다. 도산은 한 번 언약 하였으면 이해를 초월하여 약속을 지켜야 하며, 세계 사람들이 한국인의 언약을 믿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성경은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하셨는데 우리 현실은 거짓이 차고 넘치며, 속이거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 도산이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가슴을 치며 통탄하시지 않을까?            0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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