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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1 어머니와 누룽지(어머니 주일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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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5-0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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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누룽지(어머니 주일을 맞으며) >        
                                                                             이익관 목사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20:9) 자기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0)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한 분 장로님이 여러 해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들려준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었는데, 어머니의 기억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춘기에는 많이 방황하였노라 합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잃었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어머님의 산소(山所)가 있는 시골에 내려가 여관에서 2~3일간 묵으며 산소를 여러 번 돌보고 왔노라 합니다. 저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70년이 되었어도 그리움이 떠나지 않으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장로님의 심정을 백 번 이해하겠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식당에서 간혹 회식할 때가 있지요. 각자 음식을 주문하게 되면 자기 식성에 맞는 음식을 주문합니다만 나는 십 중 팔구 돌솥 비빔밥을 청하지요. 돌솥 안에서 두툼하게 이루어진 누룽지를 씹으면 아작아작 하면서도 고소한 맛 때문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나만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는 달리 군것질이 별로 없이 가난하게 자라던 우리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란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누룽지가 전부였습니다. 내가 자랄 당시 보통학교(초등학교) 입학연령은 7~8살 이였는데 여섯 살 때,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면서도 어머니께 졸라서 교회계통의 보통학교에 등록하였습니다. 어느 날 등교하기 전 철없는 여섯 살, 어머니께 누룽지를 주시라고 하였더니 어머니께서 누룽지를 들려주시면서 “사람들이 누룽지를 먹으면 공부 못 한다더라” 하십니다. 공부를 잘못해도 좋으니 누룽지를 달라는 제 손에 누룽지를 들려주셨습니다. 일학년 공부가 끝나고 통신부(성적표)를 가져오던 날, 손위 누나가 내 통신부를 보더니‘너 공부 잘은 했다 이거 꼴찌에서 두 번째 아냐’ 59명 중 58등 한 것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어머니가 들으시더니 “애 그래도 꼴지는 안했구나.”하십니다. 못난 아들이 꼴지 안한 것만도 용하다고 두둔 하시던 어머니이기에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딸들은 그렇게도 잘하는 일, 이등을 못난 아들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으나 공부 못한다고 꾸지람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그립기만 합니다. 얼마 전 어떤 이는 아들이 공부를 잘못한다고 ‘우리 집은 이제 망했다’며 식구들을 차안에 몰아넣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꼴지 안한 것만으로도 대견하게 여기시던 어머니기에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멀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서 어머니를 뵈옵는 날, 못난 아들에게 일등 목사는 못 되었다고 꾸지람 보다는 험한 세상에서 꾸준히 목회하면서 믿음을 지킨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며 안아 주시겠지요. 그래서 내 어머니요, 내가 그리워하지요. 어머니주일이 되니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0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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