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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2 조금 참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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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04-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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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참았을 것을! > 
                                                                            이익관 목사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2~24)
 
초등학교를 네 번째 학교에서야 졸업했다면 자주 이사하였다는 뜻이다. 신천이라는 소도시에서 사리원이라는 대도시로 이사 온 후의 일이다. 아직 학교에 전학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숙부께서 오셔서 앞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사립학교 보다 공립학교로 전학하여야 한다고 하신다. 이제까지 다닌 세 학교는 교회에서 세운 학교로 명신, 덕성, 경신 등으로 총독부에서 보통학교라는 명칭을 허락지 않은 사립학교들이다. 사립에서 공립학교로 전학하려니 재학증명서, 성적증명서를 가져오란다. 이것들을 준비하다 보니 시일이 걸려 여러 날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여 울적한 가운에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밖에 나가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내 나이 비슷한 애가“야 촌놈아 너 어디서 왔니”하지 않는가. 시골서 도회지로 올라왔으니 촌놈은 촌놈이다. 여러 날 등교 하지 못하고 있어 울적하던 차라 나도“ 뭐야 이XX야 ”그러다 보니 싸움이 났다. 서로 멱살을 잡고 씩씩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집배원 아저씨“이 놈들 공부는 안하고 길에서 싸움이나 하고”그러고 군밤 하나씩 주시고 떼 놓으셨다. 길거리에서 싸운 다음날, 준비한 서류를 가지고 학교에 가니 일인 선생이 사립학교에서 왔으니 일본말을 제대로 하는지 몇 마디를 묻고 “우리의 집” 이란 제목으로 일어로 글을 쓰란다. 그 때 글 첫 머리에 ‘우리 식구는 5 인입니다’ 하였더니 일인 선생이 곁에 있는 한국인 선생에게 식구가 무슨 뜻이냐 물자‘가족’이라니까 한 참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그 때 우리말과 일본인의 말이 다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을 따라 간 교실이 5-2 반으로 맨 뒷자리에 자리가 하나 남아 있는데 여기가 네 자리라 하신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애를 보니 어제 이놈 저놈 멱살을 잡고 싸운 바로 그 애가 아닌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대 더 때려 주었을 걸, 보다는 어제 싸우지 말고 참았을 걸, 그러나 때는 늦었다. 과목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도 서로 말 없이 벽과 천정만 서로 처다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이가 없다. 그러기를 2~3일 지난 후 주일이다. 숙모님이 오시더니 자기가 나가시는 교회로 가자며 길을 인도하신다. 주일학교에 가니 주일학교 선생이 5학년 반에 앉아 있으란다. 주일학교가 시작할 즈음에 헐떡이며 뛰어 들어오는 애가 있지 않은가. 엊그제는 싸웠고, 학교에서 같은 책상에서 서로 쳐다보지도 않던 그가 아닌가. 어릴 때의 일이지만 일생 잊을 수없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었다. 성도가 사소한 일로 다툰 이와 오늘 같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면, 어제 서로 눈을 흘긴 이를 주일예배에서 만났다면 어떨까. 이를 우리나라 속담에‘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는 말대로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조금은 섭섭해도, 원망스러워도, 손해를 볼지라도 조금만 참으면 후회 없으리라.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현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요.                                                  04/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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