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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관 원로목사

2014 선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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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대명
작성일 14-06-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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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1-12))

   모 일간지 종교 담다아 기자는 목사들의 청빙문제 무너짐이 가장 무섭다며 교회가 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마치 뺏고 빼앗기는 게릴라 청빙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렇게 지적한 것은 최근 L.A에서 목사들의 이동하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성경에 목사라는 말을 에베소 4:11에 처음으로 나와 있는데 그 뜻은 “먹이다, 보호하다.”라는 뜻으로 목사는 두 가지 음성 중 하나는 양을 모은 음성이요, 또 하나는 이리와 도적을 쫓는 음성이다.  이 뜻을 잃어버리면 주님의 말씀대로 삯꾼 목사가 된다.  목사들이 자기의 명예욕에 더 큰 교회, 보다 나은 대덥 받는 교회로 교인들을 팽개치고 밤 도망하듯 하는 목사를 두고 한 말이다.  사회 신문 기자가 지적한 대로 오늘 목사들의 청빙 문제를 교회나 목사나 다 같이 반성할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지적을 보면서 오랜 전에 읽은 한 분 목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영국에 존 퍼싵(John Fawcett 1740-1817) 목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영국 웨인즈게이 (Wainsgate) 침례교회 목사로 그가 현재 섬기는 교회는 연봉이 25 파운드인데 식구는 계속 늘어 생활이 어려워 연봉을 40 파운드로 올려주기를 청하였으나 가난한 성도들은 이 요청을 들어줄 힘이 없었다.  퍼싵 목사는 서재의 책과 가구를 팔아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던 중, 때마침 침례회인 카터레인 교회의 초청을 받아 런던으로 모든 짐을 마치에 실은 다음 떠나는데 남자 교인들은 가난하여 사랑하는 목자를 보내기 부끄러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편 여성도들은 떠나는 목사를 자기들이 담당 못하여 붙잡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여 어린 자녀들을 껴안고 떠나가는 목사를 차마 쳐다볼 수 없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퍼싵 목사는 런던 큰 교회에 가면 대접도 제대로 받으며 목회할 꿈을 펴리라 말에게 채찍질하며 교회를 떠나 100여 미터를 가다가 모자를 벗고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는 장로, 집사를, 붙잡을 힘이 없어 눈물만 흘리는 여성도를 두고 떠날 수 없어 달리던 마차를 돌려 도로 교회로 돌아와 짐을 풀고 그가 지은 당시의 찬송가가
주 믿는 형제들 (새찬송가 221장)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찬송가를 작성한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찬송가 “주여 복을 구하오니 편히 가게 하시고” 폐회 찬송을 작사한 것이다.  그는 후일에 1793년 브리스톨에 있는 침례교 대학 학장으로 초빙하는 것을 거절하고 비록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찬송가 가사를 지으시다 1817년 소천하셨다. 삯꾼 목사의 차이는 여기에 있나 보다. 
06/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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