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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세집, 두 옆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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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6-08-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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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은 책에서 일본 속담에 '앞 세집 두 옆집'이라는 이웃의 범위가 있다고 읽었다. 동네에 살면서 적어도 다섯 집과는 이웃이 되어 살라는 뜻으로 전해 내려오는 금언이라는 것이다. 그걸 읽고 나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어린시절 살던 연희동 신문사 주택은 온 마을이 서로 알고 교류하지 않았던가. 대한일보의 홍부장댁, 서울신문 송부장댁, 소설가 곽학송 선생이 오래 어울려 살았고 김광섭 시인도 새집 지어 이사오고, 조지훈 시인은 담 너머 뒷집 살다 이사가셨다.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넘어 아이들 성적은 물론 아버지들의 월급과 명절 때 들어오는 선물까지 공유되어서 비밀이라곤 없었다.

너무 오픈된 한국식보다 이웃의 범위를 숫자로 정한 일본식 방법이 더 합리적인 것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자 했는데 다섯집과 이웃되는 건 쉽지 않았다. 다섯집을 이웃으로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잡채 접시와 불고기와 부침개가 담장을 넘었다. 감사절엔 파이를, 성탄절엔 초콜릿을 돌렸다. 드디어 별식을 나눠먹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두 앞집의 한나 할머니와 일본계 3세인 미오 아주머니가 세상을 뜨고, 옆집의 잭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섯 이웃 중 한 앞집과 한 옆집만 남았다. 그 집들에 새로 이사온 젊은 가족들과는 통성명도 못했다.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었다. '혈육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2년 전 일요일 아침 아랫집에 불이 났을 때 불구경 나온 이웃들을 단체로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많이 바뀌고 모르는 얼굴이 많아 놀랐다. 요즘 핫스팟이라는 우리 동네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몰린다는 소문대로 동네 길에 주차한 차들도 젊어졌다. 주민들의 차림도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언덕 중턱엔 새 콘도가 들어서고 한적했던 실버타운이 활기가 넘치나 그리 반갑지는 않다.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 소란한 게 싫어졌기에 말이다. 이웃과의 세대차를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옆 집의 잭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쓴 글을 신문에서 읽은 분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방송출연을 요청하셨다. 그 분이 마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여서 팔자에 없는 전파를 탔다. 수필가가 된 이유, 이민 1세로서의 글쓰기 전망, 문인의 삶 등을 질문하셨다. 한 편의 글 때문에 생긴 인터뷰였으나 내겐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글을 쓰면 어느 누군가는 읽게 되며 단 한 명에게라도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좋은 이웃으로 살며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글을 써 달라는 덕담에 "네, 물론입니다" 흔쾌히 대답하고 왔는데 걱정이다. 적어도 세 집의 새 이웃을 만들어야 할 일이 숙제가 되었다. 주말에나 얼굴을 마주치며 "하이!" 인사만 나누던 앞 집의 젊은 부부를 뭘로 공략하여 마음을 살까?



[이 아침에] 앞 세집, 두 옆집

수필가 이정아 [LA중앙일보] 발행 2016/08/0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8/03 22:5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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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

너무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저도 그렇게 반죽좋게 새로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못되다 보니 몇년전 옆집에 이사온 젊은 커플이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생겼는데도 몰랐을 정도로 관심을 못가지고 살았더라구요. ㅠㅠ<br />
좀 더 내 이웃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살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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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갈수록 이웃의 개념도 없어지고<br />
이웃간의 유대나 친목도 불필요한 시대가 되었죠.<br />
사람냄새 풍기며 살고싶은데 말이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