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이모작 > DKPC 나눔터

본문 바로가기

부러운 이모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6-05-13 12:59

본문

IMG_2234.JPG


IMG_2227.JPG


IMG_2235.JPG



부러운 ‘인생 이모작‘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5.10.16 22:12

운동을 마치고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J여사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식사 약속이 있어 오는 줄 알고 인사했더니 일하러 왔단다.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두르고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한다. 식탁 정리하고 식재료 손질하는 일을 하루에 4시간씩 하고 있단다. 신선했다. "당당해서 보기 좋아요" 했더니 내 손을 잡고 무척 고마워한다.

만나는 이마다 "뭐하는 짓이냐?" 하기도 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보기도 해서 민망하고 기분도 안 좋았는데 그리 말해주니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며 좋아한다.

식사 마친 후 둘러앉아 함께 콩나물을 다듬었다. 아귀찜에 넣을 거라며 대가리와 꼬리를 다 떼어야 한단다. 집에서도 안 해본 짓이 처음엔 재미있었으나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허리도 아프고 힘에 부쳤다. 콩나물 다듬기도 어려운 저질 체력의 나는 칠십에 가까운 J여사의 건강이 부러웠다.

한의대 교수였던 남편이 소천했지만 생계가 어렵지도 않고 든든한 아들들이 지원하고 있는 그녀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미 알고 있던 터여서 이해했다. 집에서 TV 보고 뒹구는 것보다 사람도 구경하고 재미있어서 일하는 게 즐겁단다.

소설가 Y선생님은 60세 넘어 늦은 취업을 하시고 10년 넘게 일하시다 얼마 전 은퇴하셨다. 인생 이모작을 마치신 셈인데 아직도 활력이 넘치셔서 삼모작도 가능해 보인다. 늦게 은퇴 할수록 건강하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나보다도 젊어 보이신다.

서울의 강남에서 서점을 하던 친구는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은 후 2년 사이 소설집 두 권을 냈다. 서점 경기가 나빠 폐업하더니 종이책을 낸 것이 아이러니하다. 인생의 갈피엔 늘 이중성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도 부지런히 글을 쓴다. 소설가로서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젊어서는 생계를 위해 해야만 했기에 몰랐던 일의 즐거움. 이모작을 통해 행복해 하는 이들의 삶을 자주 본다. 인생 2막을 교육하는 라이프 코치로 활동 중인 한국의 수필가 L선생도 부럽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미 이모작 한 후 남들에게 이모작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어떤 이는 머리를 쓰고 때론 몸을 쓰며 직업에 종사한다. 무슨 종류의 일이거나 애쓰고 수고하는 일은 귀하다. 펜을 굴려도 노동이요 몸을 굴려도 노동이니 일하는 종류가 다를 뿐이지 종사하는 사람의 인격이 다른 건 아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이는 사농공상의 틀에 묶인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밥을 위한 생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밥이 우선순위가 아닌 시니어들에게 일거리가 있다는 건 덤이자 축복이다. 노년의 일자리는 단순한 것이 좋으리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건 게으름이 아닐까?

아프다며 사무실 일도 안 시키는 남편에게 야구 연습장의 코인이라도 팔겠다고 사정해야겠다. 이모작이 어려우면 1.5모작이라도 해야 덜 억울할 100세 시대이기에.

댓글목록

profile_image

HeejoongKim님의 댓글

HeejoongKim 작성일

저에게 주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중 하나는, 제가 배우고 잘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게 해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컴사를 공부하고,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할수 있어서 말입니다.  제 바램은 75, 80까지도 계속 프로그램을 하는겁니다.  시간과 보수를 재조정(줄이기) 해주기를 바라는거죠.  다들 오래사셔서 제이 계획이 잘되나 봐주십시요, ㅎㅎ.  내가 무언가를 잘하수 있어서 누군가가 돈을 준다는것, 참 좋고 뜻깊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하고싶은 일, 잘하는 일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건 큰 축복이지요.<br />
전공이 맞는 직업을 갖는 것도 축복이구요. <br />
하고 싶은 일 하며 수입도 생기고 두루 복 받으셨어요. 축하!!!

profile_image

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집사님 정원에 모링가(Moringa) 나무를 심어보세요.  남부 칼리포니아 기후에 적한한 나무고,  불모지 모래밭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나무는 성장도 빠르고 하여, 뒷뜰에 있는 grocery라는 별명을 가진 나무입니다. 삽목을 해서
여러개로 늘리는 일이 아주 손쉬운 점을 활용하면, 이모작 여생에 적한한 반려식물? 이 될 것 같군요.

profile_image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좋은정보 감사합니다.<br />
검색해보니 아주 유용한 나무군요.<br />
레몬나무처럼 별 신경 안 써도 잘 자라는...

profile_image

윤선옥님의 댓글

윤선옥 작성일

저는 핸디맨 스쿨에 등록하여 기술을 배우고 싶답니다. 소소한 집안일을 혼자서 해내고 싶은 꿈이... 그리고 조금씩 발전하여 소쇄원, 구엘공원, 부차트가든을 만들어보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나이드니 나사못 하나 박기도 힘이들어 전동 툴을 사용하면 무거워서 겉돌게 만들고... 절망스럽습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은 찬스지요. 옆눈길로 요리도 배우고 배고픈 사람에게 한끼의 정갈한 식사를 맛나게 대접하는 선업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돈 까지 벌 수 있으니 최고인 것 같습니다.

profile_image

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

저도 글쓰기는 아마도 나중에 이모작으로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직장 다녀와 저녁먹고 치고나면 몰려오는 졸음, 아이들 픽업에... 점심시간이라도 좀 짬을 내보려면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ㅎㅎ. 좀 좋은글을 써보려고 책도 사놓고 읽을 시간을 아직도 못찾고 있네요. ㅠㅠ  인생을 길게보면 지금해야할일, 또 나중에 할수 있는일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교회 봉사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건강 허락해주셔서 일모작 끝내고 이모작, 삼모작까지 잘 감당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