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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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5-11-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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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계절을 맞으며 열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또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서 묵상해 보며 과연 나는 그런 열매들을 내 삶속에 맺어가고 있나 생각하게 되네요.?? 성령의 열매에 대해 찾아보다가 좋은 글이 있어서 같이 나누고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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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란 어떤 속성인가?
성경은 성령의 열매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든다.
그러나 열매는 언제나 ‘그것이 무슨 나무인가’를 분별하는 데 등장한다. 사람도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람인지 세상 사람인지, 육신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성령의 열매를 맺자’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런데 잘 안될 뿐더러, 나아가 반대로 육체의 열매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성경은 한번도 ‘열매를 맺으라고 한 적이 없고 성령을 좇으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씀이다. 신자들은 본문에서 성령의 열매를 너무 강조해서, 열매가 너무 크게 부각되는 바람에, 본문이 의도하는 뜻을 놓쳐버리는 예가 종종 있다.
마태복음 7:15-20을 보면, 열매를 ‘판별’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는 잘 몰라도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지 않으며,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래서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나무는 가만히 둔 채 ‘좋은 열매’만 맺으라고 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성령을 좇아가고 있는지, 육체를 좇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이 열매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지, 나열된 이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열매는 맺힌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성령을 좇고 있는지 육체를 좇고 있는지를, 네가 하는 일의 열매로 분별하라”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 열매가 다같이 <성품적>이라는 것이다. 즉 능력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능력적’인 면이 아니라 ‘성품적’인 면이다. 신자들의 일반적인 오해는 ‘신앙’이 어떤 ‘능력일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길과, 방향은 언제나 ‘성품적’이고 ‘인격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을 이루는 면’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우리는 ‘일을 해결하려는 쪽’을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마태복음 7:22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의 열매로 제시하는 것은 ‘능력적인 것’이다. 놀랍게도 거짓 선지자들은 능력 일변도이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참신앙의 열매는 ‘능력적인 것’이 아니라 ‘성품적’인 것이다.
성품적으로 얼마나 ‘거룩한가, 사랑이 있는가?’를 물었다. 결코 ‘능력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좋아도 그 일에 ‘육체의 열매’가 맺혀졌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 귀신 쫓아냄, 권능, 이런 일들이 너무나 기독교적이기에 모두가 이 일을 행하는 한, 주님께 확실히 인정받을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성경은 뜻밖에 이 일꾼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심판했다. 그리고 이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든다.
우리는 보통 주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요,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을 한다. 만일 이 비유가 실천유무를 대조한 비유라면 집을 비교해야 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주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집지은 사람과 주님의 말씀 외의 것에 기초하여 집을 지은 사람을 비교한 것이다. 집 지은 것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무엇에 기초하고 있느냐를 비교한 비유이다. 집이 견고한 것도 또 무너지는 것도 둘 다 기초(성품과 인격)때문이다. 능력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얼마나 종교성이 짙은 일을 했느냐-선교사, 목사, 전도 등등-보다,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일로도 얼마나 주님의 모습이 드러났느냐-사랑, 겸손, 온유 등등-로 자신의 신앙을 판단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나무냐 나쁜 나무냐를 구별짓는 기준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열매를 맺는 신앙만이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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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돌아보게 하는 영적인 글 감사합니다.

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앞으로는 나무에 더 관점을 두어야 하겠군요. "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옛말이 있는데,
이 글의 내용에 적합할는지요?

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그런가요? ㅎㅎ 나무가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될수는 없겠지요. 물과 영양분의 공급, 따뜻한 햇빛도 필요하겠지요?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말씀을 기초로 나무가 반석위에 잘 뿌리 내려 좋은 나무가 된 후에나 되겠네요...

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저도 많이 돌아보게 되네요.. 여지까지 나름 생각했었던 신앙의 열매가 보이는것이 아닌 성품적이라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