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비, 이것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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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5-08-0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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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7.31.15 20:00
5월 말 메모리얼데이 세일에 산 차를 7월 독립기념일 연휴가 시작 되는 날 부셔 먹었다. 새 번호판을 달자마자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30년 무사고 운전 커리어에 금이 갔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더욱 교통체증이 심한 101 프리웨이에서였다. 모두가 거북이 걸음인데 오른쪽 차선에 있던 차가, 천천히 가는 교통 흐름이 답답했는지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 차의 오른쪽으로, 앞차의 왼쪽 뒷범퍼를 박는 형국의 사고가 난 것이다.
속도가 느렸기에 망정이지 천만다행이었다. 상대방 차는 아주 오래된 SUV로 탱크 같았다. 긁힌 자국도 보일 듯 말 듯이었는데, 소형차인 내차만 맥주 캔처럼 쭈그러들었다.
히스패닉 운전자는 뒤에서 박은 것은 순전히 내 잘못 이라며 면허증도 보험증도 안 보여주고 겁을 준다. 안에 두 명의 아이들이 놀라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그것도 모두 나의 책임이라나? 놀라긴 내가 더 놀란 것 같은데 말이다.
911로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더니 멋진 하이웨이 순찰 경관이 검정 가죽부츠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타났다. 경찰이 물으니 다친 사람 없다고 안전벨트도 맸다고, 상대 차의 8세, 13세 아이들이 대답한다. 경찰이 상황을 체크하고, 운전 속도 등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사고 신고를 접수하고 쪽지 한 장씩을 준다. 상대의 인적사항은 신고 접수서를 사진 찍어왔다. 양쪽 모두 마이너한 사고라고 경찰이 적었다. 보험사로 자세한 리포트가 갈 것이라고 한다.
보험사에 사고를 알리니 하필 연휴여서, 연휴 후에야 처리된다고 한다. 운전도 못하고 꼼짝 없이 집에 있었다. 실은 손도 가슴도 떨려 운전을 못할 지경이었다.
그 후 보험사에 경위 설명하랴, 손해 감정관을 만나 견적서 받고, 수리 센터에 맡기고, 임시로 차 렌트 하랴, 처리과정이 마냥 복잡하고 스트레스였다. 상대방은 어느 새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며 내 보험에 클레임을 걸었다. 내 차 수리에 열흘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양쪽 보험에서 서로 조사를 한 바 내 과실이 0%로 검증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내가 쓴 비용이나 디덕터블도 상대 쪽에 청구할 수 있단다. 한 시름 놓았다.
작은 사고지만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 거의 한달 애를 끓였다. 노심초사하며 징징대는 내게, 일상 중 생기는 흔한 해프닝의 하나일 뿐 이라며 남편이 자주 쓰는 말로 달랜다. "세라비(C'est la vie)."
정신 차리고 나니, 뒷마당 석류에 알알이 여름이 붉게 박히고 대추는 맛이 들어가는 중이어서 곧 가을이 오겠다 싶다. 지지고 볶으면서도 세월은 간다. 맞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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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나는 차량 문제로 신경을 쓸때마다 당나귀를 떠올리곤 한답니다. 자동차 대신에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시대에는 어떤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을까? 1. 우선 당나귀에 보험을 들 필요가 없으니 보험 비 부담이 없을 테고, 2. 교통체증이 생겨 오도 가도 못할 때에, 당나귀는
대로를 피해서 눈둑길을 요리조리 누비며 자유로운 길을 갈 수도 있겠고, 3. 당나귀 끼리 서로 박치기를 했어도, 주막에 들려 막걸리 한 잔
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테고.... 이렇게 엉뚱한 생각으로 갈등을 누그러뜨리기도 했습니다.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저도 다니는 곳은 병원과 스포츠센터 뿐이어서<br />
당나귀로도 충분 할 것 같은데요?<br />
교통사고 염려도 덜 할 테고요<br />
고집센 당나귀만 잘 다룰 줄 알면 그만이겠는데요.<br />
심각히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ㅎㅎ

정승섭님의 댓글
정승섭 작성일
당나귀 말씀은 너무 재미있읍니다. 근데 당나귀가 아프고, 병나고, 죽으면 어떡하죠... 그리고 먹이고 씻기고 사랑해주고...
하여간 어느시대에 살던지 이세상 삶은 걱정에서 벗어날수 없나봅니다.

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말을 생각하며 좀 견디다 보면 어떻게서든 시간은 지나가고 문제는 해결되는거 같습니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그 찌는 더위속에 2시간을 걸어서 하이킹하며 아이들에게 옛날에는 먼곳에 가려면 다 이렇게 걸어다니고 며칠이나 걸렸다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위로(?)를 했는데 지금은 당나귀도 아니고 차 타고 시원한 에어콘 바람까지 쐬며 먼 곳을 빨리 다녀올수 있으니 가끔 차량문제로 힘들어도 그래도 세상이 편하고 좋아진것에 감사해야겠지요? ㅎㅎ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단순하게도 좋을 때만 생각했지<br />
아프고 병난 당나귀 생각은 못했네요 ^^*<br />
한 걱정 지나면 또 다른걱정 생기고<br />
사람사는 세상은 다 그런가봅니다.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아픈 핑계로 차 운전을 안하고 남편에게 의지해서 다니다가<br />
조금 살만해지니 답답해서 졸라서 차를 샀는데<br />
사자마자 사고가 나서 남편보기 미안했어요.<br />
시간이 해결해 주더군요.<br />
조심운전을, 방어운전 해야겠어요.<br />
예전보다 편리해지긴 했는데<br />
옛날보다 행복한가는 생각해볼 문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