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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련사와 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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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5-08-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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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련사와 곰탱이
이정아

우리 집 달력 귀퉁이엔 자전거 5, 뒷마당 10, 수영 20 이런 암호가 적혀있다. 이 난수표의 해석은 어렵지 않다. 운동용 자전거 타면 5불, 뒷마당 계단 오르내리면 10불, 수영 다녀오면 20불을 남편이 내게 지급한다는 약속이다. 어린아이들 심부름 할 때 용돈을 거는 것과 같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 밖에 모르는 나를, 운동 시키고자 만든 남편의 고육지책이다.

머리를 쓰지 왜 몸을 쓰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평소 머리 나쁜 이들이 사서 몸 고생을 한다는 것이 내 주장 이었다. 그러다가 수술 후 운동이 필수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로 '살기위한 운동'을 해야만 한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있는 수영장에서 체육시간을 보낸 터라 우리학교 졸업생들은 수영은 모두들 한다.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운동도 수영인 셈이다. 더위에 가장 적합한 운동이어서 '24 아워 피트니스'에 나가 조금씩 수영을 하는 중이다. 남편은 30회 왕복을 하는 동안 나는 10회 왕복이 고작이지만 더 이상은 기진해서 하지 못한다.

그것도 큰 생색을 내며 안 해도 될 운동을 남편위해 해주는 듯 유세를 떨고, 어떻게 하면 빼먹을까를 머리로는 늘 연구하고 있다. 감기기운이 있다거나, 손님이 오기로 했다거나, 전화 받을 일 등의 핑계는 이미 다 써먹은 방법이다. 보다 못한 참다 못한 남편이 상금을 건 것이다. 요 며칠 동안의 성과로 보아선 괜찮아 보인다. 나를 위해 꼭해야 되는 운동을 하면서 공돈이 생기니 웬 떡인가 싶은 것이다. 그 돈으로 교회에서 예배후의 친교시간에 아이스커피 열 잔을 쏘기도 했다. 작심 3일이 아니라 작심 3시간 정도인 나의 인내심으로 비추어 보건대 대 성공이다.

수영을 가지 못한 날엔 실내에서 자전거를 탄다. 10분 타면 5불을 벌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으로 쓰고 있다. 대추를 따러 손님들이 자주 오는 요즘엔 뒷마당도 저절로 내려간다. 그것도 한 차례 내려갔다오면 목적과 관계없이 10불을 준다니 쏠쏠한 벌이이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오니 ‘주머니 돈이 쌈지 돈’ 인 셈이고 ‘소경 제 닭 잡아먹기’이나 돈이 걸릴 때와 안 걸릴 때가 확실히 다르다. 동기부여에는 역시 상금이 최고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땐 한 달에 두 번씩 받는 고정수입이 있어서 용돈을 마음 놓고 썼다. 일을 하지 않는 요즘엔 필요한 건 카드로 뭐든 사라고 하지만 현금을 손에 쥐고 하는 나만의 오롯한 쇼핑은 물 건너갔다. 돈 쓰는 일이 곁방살이하듯 눈치도 보이고 자린고비 남편에게 일일이 영수증을 제출 하는 것도 귀찮다. 그러던 터에 운동 상금이 숨통 트이는 일이 된 것이다.

“자전거타기 오전 오후 두 번 10불에 뒷마당 두 번 20불, 수영 하기 20불 오늘의 수입 토탈 50불” 저녁때 퇴근한 남편에게 보고하고 결제 받으려는 데 온 몸이 쑤신다. 돈에 눈이 멀어 너무 무리를 한 탓이다. 에구구.

남편은 나를 훈련하는 조련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러 위로 기어오르다 보면, 나는 어느새 재주넘는 곡마단의 곰탱이가 된 기분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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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옛 말에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Chinese가 갖는다” 는 말이 있는데요

지금은  Chinese 는 돈만 내고  곰이  돈을 다 챙기지 않는  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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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곰이 챙기는 돈도 실은 가정을 위한 <br />
살림살이에 쓰는 거라 돈의 이동만 있을뿐<br />
그게 그거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