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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꿈꾸며-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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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선옥
작성일 15-09-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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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꿈꾸며-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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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나는 떠나고 싶었다. 가난도 무질서도 싫었고 무리지어 고함치는 획일성도 싫었다. 떠나고 떠나다 보니 여기 있다. 낡고 바닷가, 잡음의 파도 소리를 보내고 산티아고 노인을 기다리고 싶다. 남은 생명을 판에 걸고 집채만 고기를 잡았던 헤밍웨이의 어부를 만나고 싶다. 쿠바 나라 노인은 나를 기다리며 감추어둔 회심의 미소를 그때 보여줄 것이다. 해변에 눕는다. 해변이 천천히 그림자를 옮기면서 나를 치며 가라고 때까지 계획 없이 떠다니던 생을 후회하지 않겠다. 내가 무리를 떠나온 것은 비열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할 있다. 노을이 키웨스트 해변에 피를 흘리고 흘려 모든 바다가 다시 무서워질 때까지, 그리고 바다의 자식들이 몰려나와 신나는 춤을 즐길 때까지.

?

마흔두 개의 섬을 연결한 마흔두 개의 다리를 건너며 차를 달려 시간 만에 도착한 . 어느 다리는 길이가 30 정도까지 되어 가늘게 흔들리며 망망 바다에 있어 어지러웠지만, 헤밍웨이는 야자수밖에 없는 마지막 섬에 프랑스 미녀를 데려와 넷째 부인으로 살림을 차리고 말술을 마셨다. 중간에는 사람 크기의 상어를 잡고 거대 다랑어를 잡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사자와 표범과 코뿔소를 피투성이로 죽이고 종국에는 총으로 늙기 전에 미리 죽어버린 남자. 그가 크고 시야 넓은 은유의 글을 읽다가 나도 시를 꿈꾸며 모든 의심과 열등감을 밟고 방을 뛰쳐나온다. 곳은 없지만 눈을 크게 뜨고 아직은 갈기 사나운 수사자를 꿈꾸며, 가슴을 펴고 바다같이 넓은 시를 꿈꾸며, 다시 키웨스트의 헤밍웨이를 꿈꾸며.?


아직도 서점은 조금 붐빈다. ?

급하게 시를 옮긴다.

어제 산 마종기 시집에서 골라낸 하나의 시를 써 본다.?


신학기교과서를 팔아서 돈을 조금 벌었으니 제일 먼저 서점으로 달려갔다.

ANR서점 철학책 코너에도 있는 올리버 색스의 한국어 번역책 두 권과?

마종기 시인의 신간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을 샀다.

마구잡이로 이것 저것 사려고 하다가?

올해 초 시작한 ?칼 융의 저작집을 다 읽고 난 후에 다른 책을 사자고 나를 다독였다.?

8권째 <영웅과 어머니 원형>과 9권 <인간과 문화>를 읽으면 칼 융 공부는 다 끝나니까.


시집 한 권이 ?십 불이었다. 오백원짜리같은 느낌이 들면서 얼핏 옛생각이 피어올랐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서점을 들릴 때 마다?

500원을 털어서 민음사 시집 플로베르, 뮈세 등등을 사서 모으던 생각이 난다.

시집을 사던 날의 풍경을 한 줄로 적던 버릇이 있었는데...

가령 이런 글이다. "북풍이 세찬 날에 사다 1977. 11. 25"

옆에서 빼앗아 읽던 친구는?

"오호라 ! 오늘, 철학자의 바바리코트가 참으로 멋있네"라고 했었지.


이 책은 아무 글귀도 적지 않았다.

아무도 읽지 않은듯 읽다가 ?전재욱 시인님께 드릴 예정이다.

나보다 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쓰는 천상 시인님께?

오는 주일날 드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오직 시를 사모할 뿐이지 직접 쓸만한 ?예언자적인 재능은 없는 탓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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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살고 싶은대로 살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 싫은 것을 참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라는 말에도 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니겠는지요. 의학에 평생을 몸담아 온 분이 시문학을 끝끝내 지니고 산다는 것! 참으로 순수한
인성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는 저입니다. 순수성으로 말하면 마종기 시인의 아버님을 말하는 것이 겠구요.
마종기 시인의 아픔을 저도 함께 아파하고 싶은 마음기도 하고요.  윤선옥 선생님께서도 마 시인의 시를 읽으시는군요!

*** 아니 ! 저 지금 천상에 있습니까?  오늘은 월요일, 아직 여섯 밤이나 남았는데.... 빨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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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옥님의 댓글

윤선옥 작성일

고된 노동의 후유증이 이제 나타나나봅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고 특히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위산이 청신경 등 머릿속까지 올라와 쿡쿡 찔러대는 통에 비실거리며 일을 합니다. 저도 기다리는 것은 잘 못합니다. 남편은 나보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못봤다고 종종 말하지요. 제가 괜한 말씀을 드렸나 봅니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생의 정확한 예지와 떠나온 자의 아련한 향수가 시 속에 있어 공감이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