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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드롭(June Drop), 나무는 떨구고 사람은 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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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5-07-2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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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드롭( June Drop ), 나무는 떨구고 사람은 비우고


백수로 지낸 지 2년이 넘었다. 외출이라곤 병원에 검사하러 가거나 수영하러 스포츠센터에 가는 정도이다. 책 읽고 컴퓨터 하고, 글도 쓰면 하루가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오래 놀다보니 지루하다. 30분 일을 하면 한시간은 쉬어야 하는 저질 체력이 되어버려서, 앞으로도 일해서 돈을 벌 기회는 없는 셈이다.

작은 텃밭을 만들어 물주고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는데, 하필이면 올해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이어서 정원놀이도 즐겁지만은 않다. 화초도 물을 덜 먹는 다육식물이나 선인장류로 바꾸길 권하고, 잔디도 인공잔디로 교체하면 수도전력국에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해준다고 한다. 우리집도 스프링클러를 잠그고 호스로 물을 주기 시작했고, 설거지물을 모았다가 텃밭에 준다. 회사의 잔디밭은 인조잔디로 바꾼다고 신청해 두었다.

나처럼 장기이식을 한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는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특히 주의해야한다. 사람 많이 모이는 장소는 되도록 삼가고, 정원일이나 분갈이도 하지말라는 퇴원시의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걸 깜빡하고 흙을 만졌더니 피부에 가려움증이 생겨 고생 중이다. 봉지 흙에 퇴비가 섞인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가만있는 게 돕는 거라며 사고치지 말라는 남편의 잔소리 들었다.

텃밭을 돌보러 뒷마당에 자주 내려가다보니 평소에 관심없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물을 주다가 자세히 관찰을 하니 여물지 않은 아기열매가 무수히 나무 주변에 떨어져 있는걸 보게 되었다. 꼭지까지 달린채로 사과, 복숭아,자두 ,감나무 ,무화과 ,아보카도 등 우리집의 유실수 전체가 같은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며칠사이 점점 더 해서 달린것보다 떨어지는게 많아보였다. 물을 덜 주어서 생긴 병인가 싶어 내 탓인양 덜컹했다.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 집에 25년도 넘게 살도록 그걸 처음 봤냐며 혀를 찬다. 해마다 6 월경에 과일나무에 있는 일이라며 그래서 'June Drop'이라고 한다나? 나무의 다이어트 방법이란다. 과일을 먹기만했지 도통 돌보지 않았으니 전혀 몰랐다.

가드닝 전문회사인 허드슨 밸리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같은 답변이 나와있다.

"It’s also time for the fruit trees to do a little self-pruning. Over the next few weeks, you should start to see some of the small fruits dropping and littering the ground. Don’t panic. This is normal. They’ve even given it a name. It’s called June Drop."


놀라지 말란다. 그게 정상이라고. 나무의 스스로 걸러내기 방법, 더 튼실한 열매를 위한 약한 것의 희생인 것이다. 자연의 질서유지 방법은 신기하다. 당연한듯 비우고 내려놓기를 하고 있다.

앞다투어 선두에 서려는 사람들은 남들을 밟고 일어서야 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해 주변은 돌보지 않는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산다. '죽으면 살리라' 를 온 몸으로 실천할 줄 아는 나무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내 인생의 6 월도 비울줄 아는 순한 나무 같았으면 좋겠다. 이세상 모든 것에 담긴 뜻을 헤아려보며 살 일이다.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 이 아침에 06.29.15 21:53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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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

참으로 반가운 이 선생님 글을 읽습니다. 힘겨운 투병 기간을 거치시고도, 필력이 변함 없으심을 뵈오며 하나님게 감사하는 마음이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 선생님과 같은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 설혹
먹지를 않았더라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중복해서 먹는 것이 불안해서요. "June Drop" 이란 단어는 생소하지만,  나무에게
그런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새삼 경외심이 더해 집니다. "세상 모든 것에 담긴 뜻을 혜아려 보는 삶" 저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 입니다.

저처럼 건강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하는 선생님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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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전재욱집사님의 격려로 회원 가입을 하고 글 하나 이미 발표된 것이지만 올렸습니다.
교회 홈피가 좀 더 활발하게 움직여서 사이버전도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읽고 글도 올려보겠습니다. 집사님을 뵈면서 투병에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잘 지키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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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joongKim님의 댓글

HeejoongKim 작성일

저도 넘반가운 글이었읍니다.  집사님 회복에 대한 내용을 보게되서 더욱더 반갑습니다.  그런 약을 매일 드셔야 하는군요.  하루 빨리 더 회복하시길 기도 드리겠읍니다.  저도 사실 유실수는 어렸을때부터 집에서 조금 갖고 있었는데 "준드롭"이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제 아버지가 미리 다 가지치기, 열매 솎(?)기 를 하셔서 제가 그런걸 볼수 없었나 봅니다.  여기서는 큰나무가 없어봐서. ㅎ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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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김희중집사님 읽어주시고 다정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아파봐서 아픈이에게 더 마음이 가고 기도하게 됩니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환자뿐 아니라 식구가 다 아픕니다.
돌보는 배우자의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지요.
지은집사님이 수술 무사히 마치고 오셔서 참 좋았어요.
멀리서 봐도 마음으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되셔서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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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joongKim님의 댓글

HeejoongKim 작성일

넘감사합니다.  많은분들 기도 덕분에 제 아내도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는것 같습니다.  치유의 하나님께서 저희 모두를 치유하실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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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

안그래도 지난주에 책장에 꽂혀있던 "참 좋다" 수필집을 우연찮게 손에 쥐고 밤 늦게까지 읽으며 우리 대흥교회에 문인들이 많이 계신데 좋은 글들 좀 올려주시면 좋겠다 싶어서 부탁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아마도 마음이 통했나봅니다.^^  아프시게 되고 한국 나가셔서 수술하시고 회복하실 동안 중보기도팀에서 함께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 다시 뵙게되고 글을 접하게 되니 너무 감사합니다. 새로 제 2의 삶을 사시면서 주님께서 주신 너무 귀한 달란트로 이 공간에서 많은 은혜를 나눌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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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기도 밖에는 방법이 없더군요. 치유를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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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교우들께 많은 사랑의 빚, 기도의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갚으며 살아야할텐데요.
부족하지만 열심히 글도 올리고 댓글도 달아 보겠습니다.
말없이 봉사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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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

부족한 사람을 예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June drop 글을 읽으며 2015년 한해도 벌써 7월에 접어들며 벌써 한해의 하반기로 넘어가고 있다는것을 깨닫네요.. 전반기에 벌여 놓았던 여러 일들의 분주함 가운데 교회도 규모가 점점 커가며 돌아보아야 할 사람들도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일도 한두군대, 사람들도 한두영혼에 집중하기가 많이 힘든것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과일나무에서도 그 지혜를 보여주시네요. 한해의 후반기를시작하며 우리도 June drop을 해야할 것들이 무엇인가 기도하며 연말에 좀더 알차고 큰 열매들을 맺기위해 아쉬워도 준 드롭을 강행해야 한다는것을... 많은 숫자의 열매를 맺으려는 욕심을 부리다 보면 그저 부실하고 쓸모없는 작은 열매들만 추수하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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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한 해의 전반기를 보내면서 중간점검의 의미로<br />
준 드롭을 썼습니다.<br />
그 글을 쓴 속 뜻 까지 읽어주시니<br />
대단한 독자를 만나서 기분 좋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