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배경으로 살기
페이지 정보

작성일 15-07-25 05:27
본문
?
?
?
?
[이 아침에]아름다운 배경으로 살기
?
????????????????????????????????????????????????????????????????????????????????????????????????????????????? ?이정아/수필가
?
교회의 노인 성경대학 수료식 후 기념 공연이 있었다. 40여명 졸업생들이 흰 셔츠에 검정 하의로 옷을 갖춰 입고 종강을 기념하는 발표회를 하는 것이다. 성경공부 외에 틈틈이 배운 리듬악기를 연주한다. 치매예방에 좋아서 특별활동 시간에 배웠다고 한다. 전에는 라인댄스를 했었는데 이번 학기엔 악기 연주로 바뀌었나보다. 대부분 80세 넘으신 어르신들이다.
?
노인 대학 학생들이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탬버린 소고 등을 가지고 무대에 섰다. 리듬만으로는 음악이 안 되니 멜로디 부분을 담당할 바이올린 트럼펫 건반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노인들 앞에 앉았다.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히 악기를 다루는 노년의 모습들이 참 순수했다. 노인 되면 아이 된다더니 오래 산 사람의 표정은 마치 천진한 아이들 같았다.
?
온 신경을 집중하여 고개와 손으로 열심히 박자를 세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살면서 리듬 맞추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들을 겪은 분들의 단순한 집중이 신선했다. 연세 들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는 구경하는 자녀 손주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
검정과 흰옷의 노인들이 배경처럼 서있는 앞에 손자 또래의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걸 보니 공연히 가슴이 뭉클했다. 앞서 사신 저분들의 희생으로 저 삶을 바탕으로 저렇게 밝은 청춘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
줄 맞춰 서신 그 모습이 마치 십장생을 그린 수묵화 병풍 같다는 생각을 했다. 흑백의 옷도 그렇거니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의 말간 얼굴들도 할 말 많지만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있는 동양화의 여백 같았다. 거기다 80 이상 사셨으니 장수하는 십장생과도 닮지 않았을까. 학을 닮으신 권사님도 사슴이나 거북 같은 장로님도 소나무처럼 멋진 분도 계셔서 십장생과 연결 지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
오늘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는데 마치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멜로디에 집중하다 보면 중간에 간간이 들리는 리듬악기의 작은 소리 "칭칭 짝짝 찰찰" 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주객이 전도된 듯 한 것이 요즈음 노인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사히 연주를 마치니 구경한 내가 더 기뻤다. 머지않아 나도 설자리가 아닌가.
?
나이 먹는 건 낡음이 아니라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기꺼이 다음 세대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몸소 보여 주신 것 같았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어보고자 설치기도 튀기도 했던 젊은 날이다. 그 때를 무사히 건너 온 것은 등 뒤를 받쳐주었던 든든한 배경의 손들 덕분이 아닐까.
?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인들의 인생 경험과 지혜를 그리 비유한 것이리라. 노인들께 그런 존경의 마음을 표하며 살았던가 나를 돌아보았다.
?
존재 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이면 나로 인해 남이 빛나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도록 살 일이다.
?
| |
- 이전글북미 원주민은 몽골인이다 15.10.09
- 다음글준 드롭(June Drop), 나무는 떨구고 사람은 비우고 15.07.25
댓글목록

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저도 그 연주를 참 인상깊게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앞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는 우리 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긴 했었디만 이내 진지하고 밝은 모습으로 박자에 집중하시는 모습들을 뵈오며 너무 귀여우셨다고나 할까요. ㅎㅎ 시무 장로님으로, 권사님으로, 한창 정정하실때 교회를 위해 늘 헌신하시던 여러 분들을 보며 아직은 먼 얘기같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게되겠지 하는 생각도.. 앞서가신 그분들이 없었더다면 지금의 우리도, 우리 교회도 없었겠지요.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본문보다 댓글이 더 명문이어서<br />
제가 송구합니다. 정성껏 읽어주시고<br />
좋은 소감도 써 주시고 감사합니다.<br />
선배나 스승이나 원로, 선각자가 없다면<br />
과연 우리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김세란님의 댓글
김세란 작성일참으로 멋진 비유와 따뜻한 감동의 글이네요.바쁜삶에 핑계를대며 책한권 들여다보지 못하는 요즘인데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와 너무나도 좋은글들을 많이 볼수있어 행복합니다 ^^ 다시한번 좋은글 감사드려요~

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글 쓰시기에도 힘이 드실 텐데, 댓글까지 쓰시게 함이 송구스러워, 짧은 댓글만 남깁니다.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바쁘신 집사님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젊을 땐 모두들 바쁩니다. 책을 읽거나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요.
그러나 나이들면 그리고 저처럼 아프고나면, 그때서야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추구하던 세상것들이 참 헛되다는 것과 나를 안 돌보고 너무
바삐 산 것이 후회가 됩니다.
조금 천천히 긴 호흡으로 사시면 좋겠어요 젊은 분들은 ㅎㅎ

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전재욱집사님, 감사합니다. 몽골인 글을 읽고 답 쓰려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 무식이 탄로 날까봐 그만두었는데
집사님처럼 이렇게 답글 달면 될것을...
지혜를 한 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