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의 삶
페이지 정보

작성일 12-09-23 00:52
본문
미국에 이민와서 여러 이민 1세의 대부분 부모님들처럼 비지네스를 가지고 일을 하시던 나의 두 부모님들의 삶은 이제서 돌아보면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다. 주 7일 하루도 쉬지않고 가게문을 열고 일을 하시느라 미국사는 왠만한 한국 사람들은 다 다니는 교회도 갈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아직도 그렇게 교회를 등지고 사시나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가족, 자식들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민길을 택하시고, 고생스러울줄은 각오한바 이겠지만, 그렇게 허리가 휘게 열심히 일해야 할줄은 아마 상상도 못하셨을것 같다.
일년 365일중 고작 큰 공휴일 며칠을 빼고는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눈은 안왔지만 J) 아프고 힘들고 피곤해도, 약을 주섬주섬 챙겨드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찍부터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을 하시던 분들이다. 때로는 너무 아파 병원에 가야할 지경일것 같은데도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위해 아침밥을 지으시고 하루종일 못하시는 영어로 손짓 발짓 다해가며 손님을 대하고 일을하고 들어오셔서 또 저녁밥을 지으시던 엄마... 허리 디스크로 가끔씩 고생을 하시던 아빠도 허리가 삐긋해서 그냥 보기에도 자세가 삐딱해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허리를 허리대를 질끈 묶고 천천히 일어나 조심조심 일을 가셨다. 그리고는 저녁때 돌아오셔서 꼼작없이 누어계셔야 했고, 돌아간 허리는 몇주나 지나야 다시 회복되곤 했는데, 그런 모습으로 몇주를 계속 힘들게 일을 하셨고 그런일은 일년에 몇번씩 계속 반복 되었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 다른 직원들을 못쓰셨고 모든것을 두분이 다 감당하셨기 때문에... 덕분에 주말이나 방학이면 늘 부모님을 도와야 했고 미국에 온 이후로는 뒹굴뒹굴 집에서 놀며 보낸 방학은 별로 기억에 없다.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주말과 공휴일엔 놀거 다 놀고 아프면 아파서 못가겠다 전화한통이면 되고 여름 겨울로 휴가를 낼수 있으니 부모님이 살아오신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이라 할수 있겠지만, 또 그렇게 일하는 분들이 아직도 주위에 많이 있으니 때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부모님들을 보며 자라서인지, 삶에서 주어진 많은 일들을, 아프고 힘들고 하기 싫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해 버리거나 했다 않했다 하는걸 싫어하는 편이고 아예 시작을 않하면 모를까 한번 시작한일은 모든지 끝까지 열심히 하자는게 알게 모르게 생활의 신조가 되어버린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의 근면 성실한 그런 헌신된 모습은 내 삶에 두고 두고 자산이 될것이고 나도 그런 자산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리고 자식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수고하셨던 부모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결코 헛된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위대한 탄생 2” 라는 제목으로 전에 글을 써서 올린적이 있다. 교회 봉사도 좀 열심히, 전문가들 처럼 하자는 의미에서 쓴 글이었는데 우리 남편은 여지껏 쓴 글중에서 제일 감동이 없었고 그냥 남들 다 아는 얘길 너무 상투적으로 썼다고 혹평을 했었다. 어찌보면 위대한 탄생 3편을 쓰기위한 그냥 시리즈의 글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비록 다 아는 얘기여도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읽고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었고, “열심”을 권장하는 일이 뭐 그리 나쁘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내 생각이 모자란 글이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교회 봉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것을 드리자 라는 마음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요즘들어 더 느끼게 되는건 교회일을 하며 내는 열심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인지 내 욕심 때문에,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열심인지 자신을 감찰하는 가운데 열심을 내어야 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의 열심이라도, 그것이 오직 하나님께 최상의 것, Best를 드리려는 취지의 열심이라도, 나의 과한 열심이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하고 또 심하게는 다른 사람이 교회를 떠나거나 믿음을 저버리고 실족하게 하는 열심이라면, 그건 결코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적당히 열심히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를 끼침이 과한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것 보다 나은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뒤늦게 든다. 몇주전 주일 예배때 목사님께서 “지식보다는 덕, 덕보다는 구원”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고 그리고 몇주간 이어진 “덕”에 관한 말씀에 그것들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설교 제목을 인용하자면(죄송합니다 목사님 ㅎㅎ), “열심보다는 덕, 덕보다는 구원”, 이것들을 위해 힘써야 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되었다.
자신의 열심이 어떤 결과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것 같다. 아주 최상의 결과가 있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같은 열심이 없는 사람을 정죄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상처입고 시험에 들게 되었다면, 과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열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성에 비록 않차고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좀 덜 최상의 것을 드리는 것이라도, 나의 열심이 주위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를 끼치고 또 화합을 도모하는 그런 열심인지 늘 조심스럽게 돌아 보아야할것 같다. 그리고 한번 상처입고 시험에 든 사람을 다시 회복시키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실상 젊은 청년때에는 청년부 활동도 하며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다는 우리 아빠도 교회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그로인해 부정부패의 모습으로 비추어진 교회로 인해 상처를 받고 일찌감치 교회를 등지시고 떠나셨다. 오랜 기도와 간구끝에 가게에서 은퇴하실 무렵인 70이 다 되어가실 나이에서야 어렵게 교회에 나오시긴 했지만, 한번 닫혀버린 마음은 그 오랜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고 또 쉽게 상처받고 교회를 등지셨다. 워낙 완강하셨던 두 부모님을 교회에 나오게 하려고 수년간을 기도하며 함께 중보기도 해주신 여러분의 노력끝에 얻은 어려운 발걸음이었는데, 그런 오랜 공이 무너져 버리는건, 원채 마음이 닫쳐있던 분들에게는 너무 순식간이었고 아주 사소한 일에서 였다. 그래도 다행이 자식들이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는것을 마다하지 않으셔서 별 문제없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할수가 있었고, 그래도 믿음 좋은 사위를 얻은것에 늘 자랑이셨고, 가끔 온식구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는 기도를 하자고 시키신다.
지금은 교회에 다시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그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고 있다. 오직 성령님이 그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그 닫힌 마음을 여실수가 있을것이고 몸만 교회에 왔다갔다 한다고 믿음이 생기고 구원받는게 아니니, 교회에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는 이미 접은지 오래이다. 애초부터 남들 다 다니는 교회를 우리 부모님들도 좀 나오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회로 인도하려했던 수년간의 기도와 노력이 잘못이었던것을 깨달았다. 또 우리 부모님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욕심과 열심으로 인한 부패된 교회의 모습때문에 연약한 믿음의 성도들이 복음을 접할 기회을 잃거나 외곡된 복음을 접하게되고 또 연약했던 믿음마져도 잃은채, 결국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을 자행하는것은, 또 그것을 교회안에서 허락하는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 글을 쓰며 QT를 하던중 누가복음 17장에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눅17:1-2) |
이 말씀은 언제 들어도 너무 무시무시한 말씀이고, 이 말씀을 대할때마다 내 삶을 다시한번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생각없이 했던 행동에 시험받고, 혹시나 나로 인해 실족되는 사람이 없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며 이 말씀을 대할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가득찬다.
작년에 교회 도서관에서 빌려 보게된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이란 이 두 책들은 내게 너무 충격적인 교훈들을 주었었다.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받고 싶은 것도 욕심이요, 그것도 내려놓을수 있어야 한다는것. 때로는 나의 열심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내려놓을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내가 정말 하기 싫은것을 해야하는것도 내려놓음의 한 모습이라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깨움도 있었다. 우리 믿음생활에서 내려놓아야 할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빼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날로 성화되어가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내려놓고 또 더 내려놓음의 연속인 삶을 살아야 할텐데, 그건 정말로 너무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여전히 난 근본적으로 우리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추수할 일꾼을 찾으시는 주님께서 아무 일도 않하고 팔짱끼고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일꾼보다는 맡겨진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일꾼을 더 원하실거라 믿기때문이다. 나의 과한 열심때문에 남을 정죄하고 분열을 일으키는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나, 또 남의 열심을 보며 도전 받아 함께 힘써 열심을 내지는 못하면서 남의 열심을 깎아내리고 시기하고 분열을 도모하는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바람직하지는 않을것이다.
또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 늘 불평하며 신세를 한탄하며 내가 왕년에는 이랬었는데 하는 옛 생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모습을 자식들이 보고 있음을, 또 그런 모습을 배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지금 삶에 만족을 못하고 감사함으로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굳은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그것을 열심히 할수 없다면, 그처럼 불행한것도 없을 것이다. 일확천금의 기회만 노리느라 손끝에 물 한방울 안뭍치고 엘리트의 일만을 추구한다면 그런 모습의 자녀를 키우게 될것이고 자손들에게 물려줄수 있는 재산은 커녕, 근면 성실로 열심히 사는 모습의 자산도 남겨줄수 없을것이다.
이제 많이 노쇠해지신 모습이지만 때마다 딸들네 집에 힘든 몸으로도 김치, 짱아찌, 손녀가 좋아하는 오이지를 담가서 열심히 나르시는 두 부모님의 모습을 대하며, 가족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쉬지않고 열심히 한평생을 일해오신 부모님들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기위해, 오늘도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할수 있는 일터로 향하며 또 아이들을 향하여 같은 열심을 내어본다. 아직도 부모님들의 희생과 노고에 비하면 멀기만한 길이지만... 그리고 사랑하는 그분들의 영혼이, 지금은 비록 실족하여 마음이 닫혀 버리셨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시고 결국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함께 계속 살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모두 죄인된 성도들이 모인 교회안에서 좀 연약한 지체의 부덕한 모습으로 인해 더이상 실족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American Dream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주 오랜, 꾸준한 열심과 수고가 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다. 아주 성대하고 큰일을 이루지는 못하셨더라도 두분처럼 성실히 일함을 배우고 베품에 인색하지 않고 의기 화합할수 있는 자식들, 형제들을 가진 우리 부모님들은, 그 소박한 American Dream을 이루셨다고 감히 얘기하고싶다.
천국 드림도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열심이나 노력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만, 아무런 열심없이 덕없이, 또는 남들을 실족시키는 헛된 열심만 가지고 간신히 턱걸이로 가게된 천국이라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며 헌신하신 예수님을 과연 무슨 낯으로 뵈올까...
- 이전글와송의 효능 12.09.19
- 다음글네 사랑의 본은 누가 주었나 12.09.24
댓글목록

jwj님의 댓글
jwj 작성일훌륭하신 집사님의 부모님을 대흥교회에서 뵈올 날이 오기를 <br />마음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