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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하나/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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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9-01-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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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하나

이정아

오래전 미국에 올 당시,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말들이 있었다. 와보니 맞지 않는 정보가 더 많았지만 이런 거였다. ‘미국대사관의 비자를 받으려면 인터뷰 때 한복을 입고 가면 비자가 잘 나온다.’ ‘미국에선 파티가 종종 있으니 파티용 한복을 지어가라.’ ?‘미용비가 비싸니 헤어 컷 기술을 배워가라.’는 것 등이었다.

?지금부터 33년 전이니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통행도 번잡하지 않을 때여서 그 걸 다 믿었다. 도리가 없지 않은가? 미국대사관에 한복을 입고 가서 인터뷰했다. 공부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니 학교의 입학 허가서를 지참해 보이기만 하면 결격사유가 없었다. 공연히 한복을 떨쳐입고 가서 우스운 꼴만 된 셈이다.

그 당시 한국에선 유학생 가정이 1년에 1만불만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쪼개어 한달에 800불 남짓으로 살아야했다. 기혼학생 아파트 월세 250불 내고나면 500여 불로 한달을 살아야했으니 되도록이면 한국에서 모든걸 공수해왔다.?

미국살이 첫날, 배로 부친 짐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혹시몰라 이민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코펠 하나가 유용하게 쓰였다. 식탁대신 종이 박스위에 상을 펴고 코펠로 밥을 짓고 찌개도 끓이고 코펠 뚜껑으로 커피도 마셨다. 남대문시장 등산용품점에서 사온 코펠은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유일,만능조리기구였다.

?파티용 한복은 친정엄마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색색으로 다섯 벌이나 새로 지어왔건만, 우리가 살게 된 텍사스 주립대학이 있는 도시 오스틴(Austin)은 찜통더위여서 한 번도 한복을 입고 가는 파티가 없었다. 그곳은 도시 전체의 유니폼이 반바지에 티셔츠이다. 그 한복들은 이곳 엘에이까지 가져와 입어보지도 않은 채 교회의 거라지 세일에 기증하여 팔려 나갔다. 아마 어느 히스패닉 가정의 커튼으로 쓰이고 있지나 않을까?

?루머중 하나 들어맞는 것은 미용기술을 배워가라는 것이었다. 맥도날드의 '빅 맥'이 99전 일 때였는데, 그것도 비싸서 안 사먹던 유학생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시의 헤어 컷 비용이 5불이었어도 엄두가 안 났다. 솜씨 좋은 유학생 부인들끼리 서로 모여서 퍼머도 하고 커트도 하였다. 모든 한국 유학생이나 가족들은 헤어스타일이 비슷할 밖에. 지금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무척 촌스럽다.

?이야기가 곁길로 가지만, 부인들은 가내 봉제업도 했었다. 여고동문이나 대학 선후배 사이인 유학생 부인들이 큰 상에 둘러앚아 인형을 만들었다. 인형의 몸통에 젓가락으로 솜을 집어넣으며 비싼 노동력들이 미국에 와서 고생한다고 쓴웃음을 짓곤 했다. 영락없는 달동네의 풍경이었다. 그래도 비슷하게 어려울 때이니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바느질을 하면서 수다 떨고 밥도 함께 지어먹으며 놀이삼아 일했다. ?

?이민자의 필수코스인 남청여바(남자는 청소,여자는 바느질)을 경험한 것이 학위를 받은 듯 든든하다. 어떤 어려움도 다 견디어 낼 수 있다는 라이센스를 받은 것 같기에 말이다. 요즈음 돈을 싸들고와 흥청대는 철 없는 이민자들을 보며 '젊어 고생은 자산’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때의 우리들이 자급자족하던 어려운 유학생활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한다.

?한국을 떠나온지 33년이 되는동안, 동창들은 모두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듯 보인다. 가끔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있다. 한국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한다. 하지만 인생의 행로엔 늘 선택의 기로가 있는 법이 아닌가? 삶을 저울에 달아 행복지수를 알아내긴 어렵다. 산다는 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 살면서 많이 누리기도 하였지만 놓치고 산 것들이 있다. 부모,형제,친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그 생각을 하면 늘 명치아래가 저릿하다. 그 아련한 아쉬움을 글로 풀어내는 삶을 살고있으니 아마도 이런 것이 팔자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집 창고에 남아있는 낡은 코펠 한세트는 이민 초기의 어려웠던 삶을 돌아보게하는 소품이다. 초심이 들어있기에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았다. 그 첫마음처럼 남은 날도 성실히 살아야겠다.

#한국수필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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