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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도 포수 이야기 - 죽음마저 팽개친 어미곰의 새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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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0-05-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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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말씀 하신 최석도 포수 이야기 (죽음마저 팽개친 어미곰의 새끼 사랑) 입니다.



중국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

해발 800미터를 육박하는 백두산 고원 밀림에 찾아온 10월 해는 벌써 남쪽으로 난 창문을 연한 저녁 그늘로 물들이고 있었다.


팔순의 노 포수 최석도 씨는 눈길을 어두움이 어른거리는  남창(南窓)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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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도 포수와 막내아들 광섭씨 내외

나는 늦은 점심 후 서 너 시간 동안  최석도 옹의 50년 세월동안 겪었던 숲속의 모험담을 홀린 듯이 듣고 있었다.

사슴으로 곰으로 멧돼지로 옮겨 다니며 시간을 잊게 해주던 열띤 대화의 주제가  최포수의 가족 이야기로 옮겨 오면서 그만 그  열기가 식어들기 시작했다.


최포수에게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이 제일 맏이였는데 북한이 잘 살고 중국이 못 살던 60년대에 북한 총각과 중매로 만나서 사귀다가 결혼하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그러고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세월이 흐르고 시국이 변하면서 점점 곤란해진다는 편지들이 날아왔다.


김일성이 죽고 공산 국가들도 하나씩 둘씩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먹을 양식이 없으니 도와 달라는 절박한 구조 요청의 편지가 자주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최포수는 이미 연로해져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고 아들 셋도 생길 것이 없는 산골에서 겨우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었다. 딸의 구조 요청에 힘들여서 서 너 번  약간의 원조를 해주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딸은 통곡을 하는듯한 구조 요청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전 국민들이 굶어 죽는 아비규환의 땅에서 딸의 운명은 점쳐 보기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멍하니 남창을 바라보고 있는 최포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분의 노쇠한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어리는듯했다. “아마 죽었을 게요.”

최포수는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깨닫고 보니 그가 응시하고 있는 남창은 딸이 있는 북한 땅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얼른 여행 가방에서 미제(美製) 허시 초코릿 하나를 꺼내 건네  드리며 말문을 다른 쪽으로 유도했다.   

  

“문혁 때 고생하셨다지요?”

문화 혁명 때 홍위병 세 놈이 이 멀고 외진 산골 마을까지 들어와 갖은 민폐를 끼쳤는데 재수 없게도 정치나 사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사람인 최석도씨가 이들 타락한 젊은 정치 깡패들의 첫 목표가 되었다.


“최 아바이 동무는 국가와 인민의 귀중한 재산인 사슴을 너무 많이 잡아  죽였소! 이 반동 아바이를 투쟁시켜야 겠소!”


[투쟁이라는 것이 대상자에게 고깔모자를 씌워 군중들 앞에서 망신주고 모욕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앞에서 이야기 했다.]


세 녀석의 두목 되는 놈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생산 대장에게 들었을 때 최포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애송이들은 마을로 들어와서 며칠간 어슬렁거리며 정보를 수집하더니 드디어  최포수부터 손을 볼 모양이었다.


이도백하진이며 안도 같은 도시에서 소위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점잖은 사람들이 어떤 망신과 수모를 당하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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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내두산촌
한국 전쟁 때 북한 고향에 갔다가 강제 징집 당하여 전선으로 끌려 다니며 수없이 사선을 넘은 그는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이 잘 발달돼 있었다. 그는 그날로 보따리를 싸서 이도백하의 친척집으로 피신을 해버렸다. 그리고 홍위병의 난동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이 년 동안이나 그는 내도산촌에   얼씬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북한에 사는 딸 이야기가 나와서 분위기가 숙연해졌던 것이다. 나의 초코렛 공세와 분위기 쇄신을 위한 말머리 유도에 그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홍위병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사촌을 데리고 곰을 잡으러 산에 올랐다는 이야기로 그는 다시 사냥 이야기로  돌아갔다.

세 놈의 애송이 깡패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나타나기 전인 그 해 이른 봄의 이야기였다.


말을 꺼내 놓고서도 그러나 그는 남창을 한동안 바라보며 뜸을 들였다.

“ 이 보오 -- 내 이 곰을 잡고서리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다 흘렸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요?”

“들어 보오-- 곰이 새끼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까지----”


홍위병의 난동이 시작되었던 1965년 초 겨울이 다 갈 무렵 그는 사촌형과 함께 미리 보아둔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을 곰들이었다.


겨울잠을 자야하는 백두산의 곰들에게는 속이 빈 고목나무가 최고의 인기 호텔이다.

보온성이 좋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곰들처럼 바위굴이나 돌 밑에서 겨울잠을 잘 수도 있겠으나 추운 북쪽에서는 그런 곳은 편안한 겨울잠을 즐기기에 너무 춥다.


빈 나무 통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곰을 잡는 사냥을 통사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곰 사냥의 성공은 곰이 겨울잠을 잘만한 구멍 뚫린 나무를 먼저 찾아내는 것이 좌우했다.

곰이 잠을 잘 수 있게 속이 빈 나무 종류로는 단연 피나무 종류에 많다. 피나무는 남한에도 있다.

그러나 곰이 들어가 동면을 할 만큼 큰 피나무는 나는 아직 보지를 못했다. 기후 관계인지 곰이 살만큼 커다란 피나무는 역시 북쪽에만 많은 것 같다.


피나무는 봄철에 꽃이 피는데 꿀을 받기에 아주 좋다. 중국에 간 길에 양봉하시는 분에게서 이 꿀을 선사 받아서 잘 먹었는데 그 향취가 독특했다. 피나무가 고목이 되어 속이 비어 있어도 출입구가 없으면 곰이 안 붙는다. 피나무 고목을 발견하면 나무에 곰이 들어 갈만한 출입구, 즉 나무그루에 구멍이 나있는가를 확인하여야 한다.


최포수가 항상 감탄하는 것은 곰이 육중한 체구를 가지고 그 작은 구멍으로 어떻게 비비고 들어가서 그 좁은 나무속에서 어떻게 몇 개월씩 버티나 하는 것이다. 곰은 아무리 구멍과 나무통이 좁아도 머리를 비비고 집어넣을 수만 있으면 귀신같이 기어 들어가서 어떤 자세가 되었건 자리를 잡고 긴 동면에 들어간다.


지난여름 녹용 사슴을 다니면서 최포수는 그런 구멍을 가진 피나무들을 두어 그루가 있는 지역을  우연히 발견했다. 침을 삼키면서 반년을 기다리다가 그 것들을 털러 지금 출동하는 길이다.


올 처음으로 나가는 통사냥에 사촌 형님이 큰 도끼와 솥 등이 든 망태를 메고 따라왔다. 곰 사냥은 너끈히 혼자 할 수 있어도 잡은 뒤에 뒤처리나 운반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 할 때가 많았다. 더 해서 먹잘 것이 별로 없는 농한기의 산촌 생활에 배를 많이 곯았을 형에게 영양 보충을 시켜줄 생각에 최포수는 내심 기분이 부풀었다.


“ 곰 순대를 꼭 먹을 수가 있어야 하는데 ----”

곰 순대는 산에서 나는 별미란 별미는 전부 맛 볼 수 있는 백두산 포수들이 그중에서도 손꼽는 별미였다.


곰은 동면 몇 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 곰 창자는 텅텅 비어있어 물에 씻지 않아도 깨끗하다.


먼저 아무것도 안 먹어 졸아 들대로 졸아든 곰 창자를 손으로 한참을 주물러 부드럽게 만든다. 여기에 잘 다진 곰 고기와 피를 넣어 순대를 만든다. 이것을 나뭇가지에 칭칭 감아 모닥불 위에 구우면 기름이 지글지글 끓어 오르면서 구워진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순대를 칼로 잘라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듯이 맛이 좋다. 최포수는 이 순대 맛을 천하 진미라고 표현했었다.

순대 맛을 떠 올리며 고이는 침을 삼키며 한참을 걸어가자 예의 피나무들이 보이는 산 사면이 지척에 보이는 산모퉁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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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동북지방의 흑곰[반달 모양이 선명하게 보인다.]

최포수는 형에게 주의를 주고 사방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요 며칠 새 날씨가 너무 푸근했다. 이렇게 날씨가 푸근하면 곰이 착각을 하고 동면에서 깨어나서 기어 나오기도 한다. 그런 곰은 새끼를 데리고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갑자기 부닥치면 위험 할 수도 있다.


예정했던 첫 나무에 도착 할 때까지 아무 것도 발견 못한 최포수는 짐을 내려놓고 나무 주변을 살폈다. 나무 윗부분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길게 갈라진 틈이 있었다. 곰은 그 틈을 발톱과 이빨로 확장해서 기어 들어간 흔적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 발자국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곰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다는 말이다.


최포수는 안심하고 사촌형에게 말했다. 

“형! 두들겨 패보오!”

나무 안에 곰을 깨워서 기어 나오게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태에서 도끼를 꺼내들었다.


최포수는 10미터 떨어진 곳에 시야가 터진 곳에 자리를 잡고 총을 꺼냈다. 총은 12번 산탄총으로 꺾어서 장탄하는, 그 지방에서 퉁포라 불리우는  단발총이었다. 최포수는 총를 꺾어서 외토리 탄 한발을 장탄했다.


형은 도끼머리로 서 너 번 나무를 때리고 나무에 귀룰 대고 기울였다. 

아무 소리가 없자 형은 다시 나무그루를 서 너 번을 후려쳤다.


최포수는 조바심이 났다.

나무 통속에 곰이 없다며 멀리 떨어진 두 번째 나무까지 찾아가야 한다. 잘못하면 설사 곰을 잡았다 해도 산에서 잠을 자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 너 번의 도끼질이 나무에 가해지자 귀를 대기도 전에 나무 안으로부터 나는 무슨 소리가 조금 떨어진 최포수에게 까지 들렸다.


최포수는 총을 고추 세웠다.

“ 부시럭 ! 부시럭!”

곰이 나오고 있는것이다.

곰은 나무통에 들어가면 무슨 수를 써서라고 딛고 나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디딤 틈을 만든다.

도끼질에 잠이 깬 곰이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불과 10초도 안되어 구멍으로 곰이 얼굴을 내밀었다. 눈이 부셔서 한참 눈을 깜짝거리더니 지금 자기가 어떤 동물들과 맞서고 있는 것을 알았다. 금새 곰은 이빨을 들어내고  위협했다.

“ 우- 앙!”

사촌형은 기겁을 하고 최포수의 뒤로 숨어서 발발 떨었다. 곰은 서 너 번이나 위협하는 소리를 질렀다.


최포수는 총을 쏠 수는 없었다.


나무통에서 나오지도 않은 곰을 쏘면 곰은 나무통 안으로 그대로 떨어져 죽어 버린다. 곰을 회수하려면 도끼질을 한참해서 나무를 베어 쓰러뜨려야 한다. 물론 그 쓰러진 나무는 땔감으로나 쓸 수 있을 뿐이다.


그 것은 참 수지가 맞지 않는 짓이었다. 속이 빈 나무는 그대로 놔두면 다음 해에  다른 곰이 들어와서

겨울잠을 자게 된다. 그래서 곰을 나무 밖으로 유인해내서 쏴 죽여야 하는 것이 겨울철 통 사냥의 수칙이었다.


최포수는 형에게 외쳤다.

“돌을 던지시오!”

곰의 위협하는 소리에 겁을 먹던 형은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고함을 지르는 최포수의 채근에 용기를 내어 곰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곰은 용케도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돌 들을 피해냈다. 한 두 개의 돌이 곰에게 맞았지만 미동도 하지도 않았다. 돌팔매질 따위야 얼마든지 해보라는 태도였다.  


최포수는 직감했다.

‘새끼가 있구나 ----’

곰은 동면중에 새끼를 출산 한다 . 이년 만에 한번 낳기 때문에 새끼를 낳지 않는 곰들도 많았고 너무 늙거나 젊어서 새끼를 낳지 않는 암놈도 많았다. 그래서 새끼를 낳은 동면 곰을 만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가 않았다. 동면중에 낳은 새끼가 있으면  좀체 새끼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암놈도 있는데 최포수는 그런 어미 곰을 만난 것이다.


돌을 열 개 정도 던지고 고함을 질러도 곰은 꿈쩍을 안했다.

최포수는 난감했다.

“ 할 수 없지----”


최포수는 마음을 돌려 먹었다.

이 나무를 온전히 보존하여 다음해 통 사냥을 다시해서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기로 했다.


“비껴요!”

최포수는 앞으로 두 어 걸음 나가서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곰을 총을 들어서 겨냥했다.


표적은 목의 아랫 부분이었다.

곰을 즉사시키려면 바짝 다가가서 턱 아래를 쏘아 두개골을 부수면 된다. 곰을 즉사시키는 것이 물론 인도적인 사냥의 태도다


그러나 도덕이라던가 인도주의라던가 하는 현대의 단어를 적용할 수없는 그 무렵의 백두산 포수만의 엄연한 현실이 있었다.


최포수는 지금 스포츠로 곰 사냥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되는 가장으로서 벌이를 하러 나온 것이다.


곰의 가치는 쓸개에 있었다. 웅담을 말한다.

엄청 비싸게 팔리는 귀한 약제인 웅담에 오로지 곰 사냥의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웅담은  크면 클수록 비싸게 값을 받을 수가  있다. 웅담 즉 쓸개는 담즙의 주머니라고 할 수 있다. 주머니에 담기는 담즙의 양은 항상 변화한다. 계절에 따라, 신체의 컨디션에 따라, 환경에 따라, 웅담의 크기가 달라진다.


곰은 특히 부상을 당해 분노와 고통을 겪으면 담즙의 분비가 왕성해져서 웅담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사냥의 최대 수확을 바라는 포수들은 이 점을 노린다.


우리 상식으로 보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과거 곰들은 심장이나 머리나 페를 관통 당하여 즉사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반신의 방광에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서서히 죽어갔다.


그러면 하반신이 마비되어 반격도 못하고 처절한 고통과 분노를 겪은 곰은 풍선처럼 커져버린 웅담을 남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새끼를 낳은 어미 곰을 사냥하는 것이나 즉사가 아니라 중상을 입히는 이런 백두산 포수의 위에 대해서 일단은 현대의 도덕 가치에 잠시 눈을 감고 이야기를 풀어가게 하도록 이해해주기 바란다.


방광이 아니더라도 곰이 일단 즉사가 아닌 중상을 입혀야 하기 때문에 최포수는 곰의 목 아래 가슴 윗 부분을 노렸던 것이다.

“ 쾅-!‘   

충격으로 곰의 얼굴이 뒷 편으로 패대기쳐진 듯 사라지면서 통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 우당탕-!”


이제 곰이 죽기만 기다리면 된다. 최포수와 사촌형은 백 여 미터가 떨어진 곳까지 물러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필요 때문에 곰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고통 속에 죽어가는 곰을 바로 지척에서 지켜 볼 만큼 최포수의 양심이 둔하지는 않았다.


담배를 두어 대 피운 최포수는 사촌형에게 말했다.

“ 이젠 갔겠지. 가봅세--!”


최포수와 사촌 형은 곰이 죽어있을 나무로 다가가 도끼로 찍어 구멍을 냈다. 어차피 자를 나무,곰이 정말 죽었는지를 확인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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