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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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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7-02-1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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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북치는 할배‘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2.16.17 23:11

아이가 어릴 때 학예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인 'little drummer boy' 를 불렀다. 그때 소품으로 합창하는 아이들의 드럼을 준비해야 했는데, 엄마들의 아이디어로 캔터키 치킨의 패밀리팩을 사서 그 통을 북 대신 쓴 적이 있다. 치킨 통을 목에 걸고 젓가락으로 북치는 시늉을 하며 "파~람 팜팜 파~" "파~람 팜팜 파~" 노래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후로 25년이 흘러 우리집에 북치는 어른이 나타났다. 리틀 드러머가 자라서 어른 드러머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 아이의 아비인 내 남편이 북을 치니 엄밀히 말하면 '북치는 할배'인 거다.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남편이 새해부터 팀파니를 연주하라는 명을 받았다.

순종을 잘 하는 남편은 지휘자 목사님의 말씀대로 팀파니를 쳤다. 새날의 희망을 표현하는 찬양에 둥둥 북소리는 효과가 있었다. 교인들의 반응이 좋자 요즘엔 팀파니 전담이 되었다. 남편은 양념으로 들어가는 북소리를 위해 팀파니 전공자를 찾아가 개인 레슨을 받고, 집안의 하이체어 두개는 팀파니 대신 연습용으로 곤봉 세례를 받는 중이다. 배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호기심 많은 남편은 팀파니가 익숙해질 때까지 식탁이건 책상이건 두들겨댈 것이다.

?

한때 남편의 무선통신 취미로 설치한 햄 수신기가 24시간 작동하여 소음의 고통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이와의 교신으로 "쯔 쯔 똔 똔" 기계음에 "탱고 델타 위스키(TDW) 오버" 콜싸인으로 늘 시끄러웠다. 집을 나와 일하러 회사에 가도 모르스 통신음이 이명처럼 따라다녔다. 그 후엔 트럼펫으로 20년 가까이 내 귀를 괴롭혔다(음악이 되기 전의 트럼펫 연습음은 소음일 뿐이어서).

평생 소리 공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귀가 불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의 팀파니 리듬은 그리 싫지 않다. 오히려 내가 설거지 할 때나 빨래 갤 때 박자를 맞춰주는 듯해 심심치 않다. 나이 육십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60년이란 세월 동안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도달하는 경지를 말하는데, 직역하자면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풀이하는 속뜻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 라고 한다.

세월이라는 불가항력인 시간의 힘이 만들어낸 깊이라고 해야할까. 공부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마침 남편과 내가 그 이순이란걸 앞서거니 뒤서거니 넘었다. 그래서 그런가 연습하는 북소리도 참을 만하고 남편이 연주하다 틀려도 그리 부끄럽지 않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 할배가 최선을 다하면 됐지, 쓰임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한다.

60 넘으니 내게도 남에게도 너그러운 관용의 여유가 생긴 것인가. 귀에 들리는 단순한 소리에만 너그러워질 게 아니라, 심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순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이 많이 시끄러운 것도 따지고 보면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내 생각, 내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좁은 집안에 남편이 팀파니 들여놓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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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joongKim님의 댓글

HeejoongKim 작성일

두가지가 참 감탄스럽습니다.  저희도 같이 느끼는 그런 일인데도, 참 깊은생각과 휘트로 너무 재밌게 표현하시고, 깊이있게 표현하십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일이 아닌것만은 틀립없읍니다!  우리 드러머 넘 감탄스럽습니다.  이렇게 최선으로 노력하셨군요.  전 개인적으로 베이스 소리, 북소리를 좋아 합니다.  차안에서 음향 서라운드는 항상 베이스를 더 많이 넣고 다니죠.  찬양 할때 북소리 나오기 시작하면 절로 신나서 리듬을 타게 됍니다.  아주 잘하고 계시다고 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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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하하 저에 대한 아니 글에 대한 엄청난 칭찬에 감사합니다.<br />
질기지 못한 저는 남편의 질김과 호기심이<br />
신기합니다. 잘한다고하면 좋아할거예요.<br />
단순과 여서요 ㅋㅋ<br />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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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란님의 댓글

김세란 작성일

웅장하고 멋진곡에는 꼭 팀파니가 있어서 나도 한번 배워보도 싶은 악기였는데 트럼펫을하다 팀파니를 하시는 이병성 집사님 정말 존경합니다 ^^ 그리고 이순의 참 깊은뜻이 있구나란 생각과 함께 작가님의 뭐든 긍정적으로 풀어내시는 그리고 순종하듯 받아들이시는 성품이 참 예뿌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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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저는 조신하게 가야금(?) 뜯는 집사님이 엄청 부러웠는데요^^*
긍정 마인드는 나이먹으면 그렇게 절로 되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ㅎㅎ
남 참견하는 게 피곤해지는 거죠.
폭풍 칭찬에 입이 귀에 걸립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