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레시피(recipe)
페이지 정보
작성일 17-12-12 19:33
본문
그런데 친구 말이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 치를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나더란다. 미국에 돌아오니 그때부터 조금씩 그리움이 밀리더니, 불끈 불끈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 한다. 나는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나도 그와 같았기에 말이다.
친구는 오래전 유학시절에 받은 엄마의?편지를 정리하다보니 엄마생각이 더 나더란다. 외국에 보낸 딸에 대한 안쓰러움, 걱정으로 빼곡하게 쓰여진 편지를 읽고 펑펑 울었다는 친구. 그 편지는 거의 자기가 보낸 편지의 답장이어서 자신의 유학 역사를 알 수 있기도 하였다나? 그게 바로 유품 이라며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말한다.
친구와 만나고 와서, 내 어머니는 살아 계시지만 예전에 온 편지를 찾아보았다. 나도 요즈음엔 전화로 때우지 편지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글쓰는 아버지의 편지는 귀히 여기고 어머니의 편지는 함부로 두었었다. 찾아보니 어머니의 편지도 꽤 여러 통 있었다.
밑반찬 만드는 여러 가지 조리법, '일본 무'로 깍두기를 담글 땐 소금을 적게 치라는 살림의 지혜, 돈을 얼마 송금했으니 조만간 도착 할 것이라는 안내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딸에게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철자법이 군데군데 틀리기도 한 어머니의 편지엔 아이의 돌상에 올리려고 물어본 약식 만드는 법이 써있었다. "휘쓸러에 찰밥을 되게 짓고, 큰 양푼에 담은 후 흑설탕을 넣고 대추, 밤, 잣을 버무려 렌지에 15분 돌려라" 엄마 식으로 쓴 조리법이다.
"이 서방 잘 먹는 풋꼬추 메루치 볶음은 꽈리고추를 요지로 구멍을 쑹쑹 내서 볶으면 양념이 밴다" 이런 조리법도 있었다. 그 말미엔 "미친x처럼 드리 붓지 말아라 모든 양념은 숟갈로 떠서 조곰씩" 하고 써 놓아서, 마치 과학적인 살림을 하는 사람 마냥 끝마무리를 했다는 것이다.
명색이 가정대학을 나온 딸인데도 엄마는 내 살림솜씨가 못미더우셨던 모양이다.
이 웃기는 레서피를 보고...나는 울었다.
이정아 수필가/ 5매 수필
- 이전글개골산 17.12.27
- 다음글Death Valley 에서 읽은 삶의 이야기 17.11.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