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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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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22-10-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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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밥

이정아

이민년차가 오랜 분들, 안정적인 분들께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이제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겸손한 표현이나 실은 쓸쓸한 안분지족(安分知足). 그 밥, 아직도 살만한 기준의 잣대가 되는 밥이다. 삼시세끼 밥을 먹던 우리세대에겐 밥을 먹는게 곧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밥은 홀대를 받는다. 드넓은 캘리포니아 곡창지대에 살면서 질 좋은 쌀을 싸게 공급받고 있어서 귀한 줄 모르는지. 다이어트 열풍에 탄수화물 집합체인 밥은 접시 한 귀퉁이의 흰색 데커레이션으로 남아서 버려도 되는 음식물이 되었다.

어제도 교회에서 배식을 하고 밥이 남았다. 밥이 설었다고 식사 당번은 수고하고 욕먹고, 밥은 큰 솥 한 솥이 남아 봉지봉지에 담겨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은 밥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히려 떠맡을까 봐 전전긍긍. 내가 한 봉지 맡으니 다들 마지못해 가져 가서 눈앞에서 버려지는 참사는 없었다.

그 봉지 밥으로 아침에 쇠고기 야채 볶음밥과 김치볶음밥 두 가지를 했다. 설은 밥이라 볶음밥엔 최적이었다. 그래도 절반 남은 밥. 누룽지를 만들어야겠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1962-)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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