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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선물/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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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23-05-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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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선물

이정아

연애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예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동갑끼리의 결혼이었는데, 신랑 쪽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군대도 해결 안 된 상태로 경제력이 전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예물을 서로 주고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철없는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중대사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두 집안간의 문제라는 것을 안 것은 뒤의 일이었다. 18 K 금반지만을 주고받기로 하였다는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안 그래도 맘에 들지 않는 사위가 보다 보다 별 짓을 다한다고, 머리 싸매고 드러누우셨다. 엄마 친구의 딸 들 중에서 너처럼 그렇게 조건 안 보고 결혼하는 아이는 없다 시며 결혼을 취소하기를 원하셨다.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받아야 혼사를 진행시키겠다고 하셨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권사님 이신 어머니가 그리 세속적으로 나오실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늘 내 신랑감은 돈보다도 사람이 좋으면 된다고 하셨기에, 그걸 곧이 믿었던 내가 잘못이었을까? 어머니의 종용으로 종로에서 큰 규모의 금은방을 한다는 집의 아들과 선을 봤다. 평소에 반지나 보석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산 검소한 어머니였는데, 고명딸만큼은 보석사치를 누리게 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선을 보러 가서 만난 보석상 아들은, 공교롭게도 오래전에 그룹 미팅했던 멤버중의 한 사람으로 나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예전의 나의 미팅 파트너였던 그분의 친구가 나를 궁금해했다며 반색을 한다. 그러니 선이 성립될 리가 없었다. 나의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이 이쯤 되니 어머니는 나의 남편이 연분인 모양이라며 마지못해 허락하셨다.

중간에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원하는 의사나 판검사사위보다, 공대출신의 엔지니어가 더 좋은 직업이라며 내편을 들어주셨다. 의사는 늘 아픈 사람을 상대해야 하며, 판검사는 늘 죄지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 맘이 편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과를 나온 나의 남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전한 직업이라는 요지의 아버지의 설득이 어머니께 먹힌 것이었다. 그건 내편을 들기 위해 아버지가 그냥 지어낸 이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였으나 어머니와 사위의 관계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여학교의 교사로, 군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남편은 보수가 많지 않은 국영 기업체를 의무적으로 다녀야 했다. 동갑이어서 기반을 닦아야 하므로 신혼에 고생을 많이 한 편이다. 그래도 어머니께는 내색을 못하였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 힘들게 산다고 까지 하면 안 될 것 같기에 말이다. 그러던 남편이 회사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에도 신혼에 해외에 나간다며 어머니는 잔소리하셨지만 나는 내심 좋았다. 월급을 두 배 이상 주니 내 집 마련이 앞당겨질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실지로 가계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일 년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성탄절 즈음에 남편이 돌아왔다. 내 생일이 성탄절 조금 전이므로 일부러 맞추어 귀국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만난 남편이, 나를 보자마자 손에 작은 선물 쥐어준다. 펴 보니 블루 사파이어를 중심으로 가장자리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14개가 박힌 반지였다. 그 당시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가 결혼할 즈음이어서 왕세자가 받은 보석이 신문지상에 소개되었는데, 그 모양을 카피한 반지로 당시에 유행하던 디자인의 반지였다. "다이아몬드 노래하더니... 됐냐?" 이런다. 우리 어머니께 하려던 말이었겠다.

어머니께는 어려워서 하지 못하고, 대신 내게 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남편은 몇 년 동안을, 내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주지 못해 맘에 두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 반지를 손에 끼고 당장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로 사 온 진주 브로치와 함께, 그러자 비로소 어머니 얼굴 환해지신다. 어머니와 남편을 화해시킨 작은 반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 블루 사파이어반지는 오래 전 성탄선물과 생일선물을 겸한 잊지 못할 선물이다. 엄마는 보석사치를 좋아한 게 아니라 딸이 보석반지를 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였다.

엄마 돌아가시고나니 이제야 엄마 마음을 알겠다. 후회는 항상 더디온다.

#그린에세이#가정의달 수필#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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