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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설렘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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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25-03-11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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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설렘을 아시나요

조옥규/수필가

“ 할머니, 어디 가세요?”
“ 꽃 구경 가지”
“아, 병원 가는 날이군요. 잘 다녀오세요.”
주차장까지 내려와 아들을 기다리는 어르신은 연세가 구십인데도 언제나 소녀같이 고우시다. 지난번에는 다리가 불편해 꽃구경을 못 간다 하시더니 이제는 병원 행차를 꽃나들이라 말씀하신다. 

  오늘은 발렌타인스 데이(Valentine’s Day)다. 거리엔 임시로 꽃 좌판대가 설치되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발길을 멈춘다.
나와는 별반 상관 없는 일이라 무심히 바라보니 꽃을 고르는 사람들이 모두들 즐거워 보인다.
이들은 꽃의 마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까. 사랑이 담긴 꽃 선물을 받아온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먹구름을 만나도 추억의 꽃향기로 힘을 얻고, 상처 받은 자존감이 치유된다는 것을.

  나는 꽃선물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발렌타인스 데이에 가족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당신은 세상에 둘도 없이 예쁜 꽃인데 무슨 꽃이 더 필요하냐.’ 며 남편은 이름있는 날마다 슬쩍 넘어갔고, 아이들은 머리가 커지면서 제 아빠의 DNA를 닮아서인지 ‘꽃을 꺽는 것은 죄악이며 시들면 불쌍하고 치우기 싫지 않느냐.’며 어미에게 억지설교를 한다. 그야말로 그들은 내가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내 젊은 날에는 시대적으로 풍족한 세상이 아니었고, 발렌타인스 데이라는 말도 없었다. 시장에 가면 양철통에 한가득씩 담겨있는 각가지 꽃들을 친정어머니 그리듯 아련하게 쳐다만 봤을뿐 가족을 위해 꽃 대신 반찬거리를 집어 들었고, 아이들이 원하던 장난감을 내 안의 빨간 장미와 맞바꾸었다.

 나의 유소년기는 꽃과 더불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음이 채 녹지 않는 이른 봄에 매화꽃을 시작으로 우리집엔 일년 사시사철 꽃이 끊이질 않았다. 우물가에 새빨간 꽃을 피우던 물앵두나무, 대문을 뒤덮은 향기 짙은 덩굴 찔래꽃, 한 여름밤 운치를 더해주던 능소화, 여름부터 국화 삽목을 키워 요술 부리듯 자유자재로 꽃을 피우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의 꽃씨 바구니는 얼마나 풍성했던가, 담 밑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원츄리꽃, 백일 붉은 꽃이라며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색색깔 백일홍, 그 외에도 봉선화, 채송화, 금잔화, 과꽃, 해바라기, 등
부모님은 영혼이 깨어있는 따스한 분 이셨다.

  꽃 구경 가고 싶다는 할머니에게 꽃 선물이라도 할까 싶어 T마켓에 들렸더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람과 꽃이 서로 엉키어 웃고 떠드니 전쟁이 따로 없다. 
평소에는 마켓 중에서 격이 있고 조용하던 곳인데 사랑이 둥둥 떠다니는 듯 흥겨운 정경이다.
‘참 좋은 세상이구나.’ 한 두다발씩 꽃을 품에 안고 계산대 앞에 줄지어 서있는 젊은 남자들이 참 기특해 보인다. 예쁘고 소중한 가족에게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사랑을 전하는 그 마음씨가 향기롭다.
나는 꽃들에게 일일이 눈맞춤으로 인사를 나눈다. 붉은 입술을 뾰쭉 내밀고 ‘봄꽃의 설렘을 아시나요?’ 라고 속삭이는 듯한 빨간 튜립 두 다발을 집어들었다. 한 다발은 병원에 다녀오시는 할머니께 드리고 또하나는 나 자신에게 선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꽃다발을 옆 좌석에 놓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여느 때와는 달리 보인다. 햇빛도 내 마음도 밝게 빛나고 스쳐 지나는 것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꽃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색(色)은 감정을 조절하고 향(香)은 행복 호르몬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튜립꽃이 영향력을 발휘하는걸까. 발렌타인스 데이의 의미를 외면하는 남편에게 꽃 선물을 주고 싶은 너그러운 마음이 생긴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붉은 튜립의 꽃말을 빌려 꽃다발과 함께 고백한다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받는 것 보다 주는 기쁨을 누리는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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