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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붕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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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아
작성일 16-02-1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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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미안하다 붕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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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 낀 이끼를 닦으려고 철수세미로 세게 문지른 탓에 이음새가 상했는지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했다. 받침대로 흐른 물이 현관을 적시고 장식장 속으로 스며들어 며칠 째 곰팡이 냄새가 난다. 깨끗이 청소하려다 사고를 친 아저씨는 붕어처럼 말이 없고 옆에서 구경만 한 아줌마는 까치처럼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댄다. 남대문을 본 떠 목조 지붕까지 얹은 집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물을 가두지 못하는 어항은 아무리 근사해도 물고기의 생명을 보전하지 못하므로 15년 넘게 산 보금자리를 철거했다.

아저씨는 더 넓은 세상에 살게 하자며 앞 마당에 수조를 만들어 이사를 시켰다. 작은 수조지만 어항에 비하랴. 5배는 더 넓어진 집이 좋아서 금붕어들은 이리저리 활발하다. 구경만해도 벅찰 지경이다. 웬 열! 난파선에서 건진듯한 보물함도, 시골집 물레방아도 들어오고 커다란 조개껍데기와 고동도 인테리어로 자리잡았다. 띄워놓은 부레옥잠에 보랏빛 꽃이 피니 운치도 있다. 새로 생긴 연못을 들여다보면서 모처럼 주인 내외는 맘이 맞았다. 의자를 놓고 앉아 흐뭇한 웃음을 연신 날린다.

새 집으로 옮기고 즐거웠는데 붕어의 행복은 잠시였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1주일 행복해지고 싶거든 결혼을 하라. 1개월 정도라면 말(馬)을 사고, 1년이라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런데 평생토록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요즘은 이렇게도 바꾸어 말한단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새 휴대폰을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며, 새 차를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새 집을 사면 일 년이 행복하다."

어느날 비친 검은 그림자는 새 집 일 년의 행복도 채우기 전에 다가왔다. 날이 추워 부레옥잠이 꽃 피우기를 그친 겨울 저녁, 검정 얼굴을 흰 마스크로 반쯤 가린 듯한 능글한 놈이 줄무늬 꼬리를 엉덩이 사이로 감춘 채 연못 가장자리에 올라가 물 속을 노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라쿤이다. "훠이" 소리질러 쫓았는데, 다음날 아침 가장 큰 붕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틀 뒤엔 검정붕어가, 그 다음날은 팔뚝만큼 자란 이끼헌터 두 마리가 실종되었다. 갈수록 대담해져 붉은 비늘을 연못 가까이에 남기고 파파야 나무 밑에도 흔적을 남겼다. 연못은 초토화되고 붕어를 자식처럼 아끼던 아저씨는 한숨만 쉰다.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귀하자 식량 구하던 라쿤이 '심봤다'한 셈인가. 쫓는 약을 뿌려도 소용없고 철망을 치려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금붕어들을 라쿤의 먹이로 다 뺏겨버렸다. 15년 넘게 들인 공은 라쿤의 일주일치 식량일 뿐이었다. 미물이어도 '우리집 금붕어'이기에 키운 정 때문에 죽음은 슬펐다. 불쌍하고 허무했다.

전도자의 말이 생각났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세상의 진리를 인간의 죽음도 아닌, 하찮은 금붕어의 죽음을 통해 떠올렸다면 너무 유치하다 할 것인가?

외출할 때 현관을 나서며 금붕어에게 "갔다올게. 집 잘 지켜" 늘 당부하던 말을 이젠 뉘게 할거나.

? 미주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1/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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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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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란님의 댓글

김세란 작성일

전에 키우던 햄스터가 죽었을때 아이들이 어찌나 상심이 크던지 애완동물 기르는걸 반대해오다 결국은 지금 강아지 한마리를 키우고 있는데요 이 강쥐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큰지 우리 가족은 죽음을 생각조차 하기도 싫어합니다.이 강쥐가 천년 만년 살줄알아요 ^^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은...그런데 우린 모두 천국백성으로 죽음까지도 감사해야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엄마를 먼저 떠나보낼때 엄마가 천국에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하며 웃음을 보여주시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나도 주님 나라에 들어갈때 그렇게 웃으며 갈수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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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joongKim님의 댓글

HeejoongKim 작성일

맘고생 몸고생 다 많이 하셨네요.  이름그대로 "정"이 많으십니다.  라쿤이 물고기 사냥도 하는군요.  쓰레기통만 기웃거리는줄 알았더니요.  나쁜 xx...  Pet 의 천국인 미국에서 살면서 가끔은 "제내들이 얼마나 느끼고 살까" 하고 궁굼해 합니다.  아마도 이 붕어들도 좋은 주인을 만나서 오랬동안 편히지냈던걸 감사했을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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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금붕어의 수명이 보통 15년이라고 해요.<br />
한놈은 노환으로 한쪽눈이 안보였는데<br />
더 불쌍하죠. 15년 넘게 키웠으니 갈 때도 되었지만<br />
자연사가 아니어서 애처롭습니다 ㅠㅠ<br />
라쿤이 잡식성에 야성이 있어서 물고기 잡아먹는대요.<br />
금붕어가게 주인은 금방 알더군요. 라쿤 짓이라고.<br />
눈으로 보니 확실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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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옥님의 댓글

윤선옥 작성일

구역 예배로 언덕 위의 집에 들락거리다가 정이 든 금붕어가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을 보고는 마음이 짜안했습니다. 이정아 선생님 뿐만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거둔 물고기 아빠가 더 맘 아프시겠지요. 선한 행동의 결과가 최악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에 조금은 쇼크도 느끼고요.
세상에는 너무 살벌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느끼다가도 아, 어떤 사람들은(IS 등등..) 지옥으로 만들며 살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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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철망을 덮어두어서<br />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 되었네요.<br />
아무리 애지중지하던 것도<br />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조차도<br />
끝이 있고 종내는 헛되다는 걸 실감하고 또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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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이님의 댓글

이은이 작성일

금붕어가 15년까지도 살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그만큼 지극 정성으로 키우셔서 오래 장수 할 수 있었으니 좋은 주인을 만나 금붕어도 행복했을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인스턴트 사랑으로 버려지는 강아지들로 가득한 animal shelter, 또 깨어지는 가정들...
저희 아이들도 거의 매일 강아지 사달라고 조르는데, 생명을 집에 들이면 끝까지 책임질 commitment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네요. ㅎㅎ
집사님의 오랜 인내와 변하지 않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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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제가 살갑고 친절한 성격이 아니어서<br />
열심히 돌보진 않았어도<br />
오랜기간의 정이 든 듯 합니다.<br />
세상 것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경고로 <br />
생각했습니다. <br />
강아지도 지나치게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br />
그 공을 사람에게 쓰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br />
애견인들께는 비난 받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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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Oh님의 댓글

KarenOh 작성일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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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님의 댓글

이정아 작성일

ㅎㅎ 감사합니다.